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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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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53) 청문지례(請文之禮)

- 글을 청하는 예절

  • 기사입력 : 2020-11-10 07: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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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나라 관리들이나 지식인들은 부모의 비문이나 부모에 관계된 글을 받을 때 가장 뛰어난 문장가의 글에 가장 뛰어난 서예가의 글씨를 받아 비석을 세우거나 현판을 거는 것을 가장 큰 효도로 여겼다. 글을 요청할 때 예물을 갖추어 사례를 했다. 요청하는 사람이 정승이고 글을 짓는 사람이 벼슬 없는 선비라 해도, 본인이 예물을 가지고 가서 정중하게 글을 요청하는 예를 갖추었다.

    당나라 정승 배도(裵度)가 대문장 한유(韓愈)에게 비문을 청하면서 비단 800필을 폐백으로 가져갔는데, 한유는 “내 문장을 어떻게 보고 이런 대우밖에 안 해?”하며 노발대발했다. 한유의 문집에는 남의 비문이 많은데, 사람들이 ‘무덤에 아첨하는 글(諛墓之文)’이라고 비웃었다. 별것 아닌 사람을 미화한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손으로서 조상에게 효성을 다하며 집안을 지키려는 정성까지 나쁘게 볼 것은 없다.

    글을 요청할 때는 지켜야할 기본 예의가 있다. 반드시 글을 필요로 하는 본인이 직접 가서 요청해야 한다. 소박하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시해야 한다.

    한문학계의 태두인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에게 큰 기업가가 조상의 비문을 부탁하면서 직원을 보냈다. 기분이 나빴지만 워낙 글짓기를 좋아하는 어른이라 지어 “다 되었다”고 연락을 했다. 또 직원을 보냈다. 한동안 받았다는 인사가 없었다. “이렇게 예의 없는 자가 다 있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그제서야 약간의 사례를 하였다.

    1995년 남양주시(南楊州市)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하루 전날 연민 선생에게 전화로 상량문(上梁文)을 부탁해 왔다. 어렵기로 유명한 상량문을 하루 만에 어떻게 지으며, 또 전화로 부탁해서 될 말인가? 연민 선생이 그들의 하는 짓을 보면 지을 마음이 안 났지만, 다산의 생가에 상량문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밤을 새워 지어 보낸 적이 있다. 지금 다산의 생가에 걸려 있다.

    한학자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은 원고 청탁을 전화로 하면 “여기까지 올 정성도 없는 사람이 내 글은 왜 찾느냐?”라며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어 버린다.

    오늘날은 생활이 워낙 바쁘고 통신이 발달돼 꼭 전화로 해서는 안 될 것은 없다 해도, 본인이 부탁해야지 남을 시키면 안 되고, 글을 받으면 받았다는 인사는 해야 한다.

    필자에게도 글을 청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요즈음은 전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스마트폰 문자만 보내놓고 전화도 한 통 안 하는 사람도 있다. “내일 오전까지”하는 사람도 있다. 초서 현판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놓고 풀이해 달라고 하면서 신분도 안 밝히는 사람도 있다. 며칠 지나서는 “왜 안 보내줍니까?”라고 항의하는 정도다.

    웬만하면 대부분 응해 주려고 하지만, 글의 가치를 모르고 예의 없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 請 : 청할 청. * 文 : 글월 문.

    * 之 : 갈 지. …의 지. * 禮 : 예도 례.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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