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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조선의 잔 다르크’ 김명시를 아시나요?- 이준희(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20-11-03 20: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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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희 사회부장

    ‘조선의 잔 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 등의 수식어가 붙은 창원(옛 마산)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金命時·1907~197)장군.

    그녀는 1907년 마산 만정(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189번지에 태어났다. 1923년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창원 성호초등)를 졸업 후 1925년서울 배화여학교에 입학했으나 여러 이유로 18세의 어린 나이에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 이후 한 평생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지역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 여전사다.

    중국공산당 상해 한인특별지부를 결성했고, 동방피압박민족 반제자동맹과 재만조선인 반일제국주의 대동맹을 조직했고 기관지 ‘반일전선’을 제작했다. 1930년 5월 조선인 무장대가 하얼빈 시내 기차역과 경찰서, 일본영사관 등을 공격해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1932년 인천에 거처를 마련한 그녀는 상해서 보내온 ‘꼼무니스트’와 지하신문 ‘태평양노조’ 등을 등사하는 등 인천지역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을 교육했으나 그해 5월 동지의 배신으로 신의주에서 체포됐다.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 혐의로 7년간 복역한 뒤 1939년 중국으로 건너가 해방 직전까지 무정 장군 직속 하의 조선의용군에 소속돼 최전방에서 여성 부대원을 이끌고 선전·선동과 초모활동 등을 전개했다. 여기까지가 독립 여전사 김명시 장군에 대한 간략한 항일 업적이다. 김 장군은 이처럼 일평생 자신의 삶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에 바쳤다. 하지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서훈 대상에서 제외된 우리 지역에서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지역시민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1월 정부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 확대 검토 방침에 국가보훈처에 김명시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으나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같은 해 11월 공적심사에서 탈락했다.

    최근 창원시가 김명시 장군의 항일 업적 등을 기리며 마산합포구 창동 골목길을 여성 친화 거리 ‘마산여성 이야기 길-김명시 장군의 학교길’을 조성하는 등 그녀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생가터가 있던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그녀가 졸업한 성호초등학교로 향하는 오동서1길 돌담 골목의 담벼락을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서 전장을 누볐던 ‘전사 김명시’, 여성친화 안심귀가 캠페인을 함께하는 ‘경찰관 김명시’, 꿈과 희망을 안고 학교로 향하는 ‘소녀 김명시’ 등의 모습을 디자인한 그래피티로 채웠다.

    문제는 창원시가 여성친화거리에 여성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을 모티브로 활용하면서 정작 그녀에 대한 인물 알리기는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104만 창원시민이 김명시 장군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당장 창원 출신 여성독립가 김명시 장군을 알지 못하는 시민들의 입에서 “이 사람이 누구길래 그의 이름을 딴 골목길을 만들고 벽에 그림을 그리지?”라는 의문의 말들이 쏟아진다. 인물에 대한 조명이 먼저 이뤄진 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도 늦지 않을 텐데 서두른 감이 있다.

    골목 담벼락을 채운 그래피티도 김 장군을 너무 희화시킨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차라리 백마탄 당당한 김명시 장군의 모습을 그대로 알리고 그 투사적 용맹함으로 여성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는 ‘골목길을 지켜주는 여장군’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준희(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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