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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2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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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2) 산청 ‘전 구형왕릉’(대한민국 사적 제214호)

사라진 가락의 뒷모습, 돌무덤으로 남았네

  • 기사입력 : 2020-10-05 21: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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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장風葬


    누가 당신 이름 앞에 비운이라 써놓고

    아직도 돌무덤에 가두어 두고 있는가

    화개골 끝 지나, 당신

    천화遷化*의 길 떠난 지 오랜데

    풀씨 하나 품지 못하는 일곱 계단 행간

    천오백 년의 전설 위에 무얼 더 얹으려

    그늘에 잠든 당신을 호명하는가

    어깨걸이 느슨한 막돌들의 폐허 위로

    물증은 허물어지고 심증만 쌓이는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가락의 뒷모습처럼

    가을바람은 스산하고

    당신 가신 길 알 리 없어

    두 눈 멀뚱한 석수 한 쌍

    어눌한 문장처럼 입구를 안내하는

    쌍무지개 다리 밑으로

    왕산 발원 물소리만 분주하네

    *천화(遷化): 임종을 앞둔 고승이 홀로 깊은 산중에 들어 생을 마치는 것.


    ☞구형왕은 532년 신라에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던 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고도 하며, 김유신(金庾信)의 증조부이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아직도 그의 능인지 석탑인지에 대해 불분명해 그 이름을 확정짓지 못하고 ‘전해진다’라는 뜻의 ‘전(傳)’ 구형왕릉이라 이름 불리는 전설 속의 유적이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 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이 신비한 돌무덤에는 이끼나 풀이 자라지 않고 낙엽도 떨어지지 않는 신비함이 있다고 전한다.

    이 돌무덤 전면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 새겨진 비석이 서 있으며 그 앞에는 비교적 최근의 시설물들로 돌무덤과는 시대적인 차이가 많아 보이는 비석과 상석(床石)과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석수(石獸)가 각각 1쌍씩 있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만든 두 개의 아치형 돌다리 밑으로는 유의태약수터를 거친 왕산 발원수가 무심히 흘러내리고 있다.


    시·글= 김일태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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