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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4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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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43) 상소극간(上疏極諫)

-소(疏)를 올려서 극도로 간쟁(諫諍)하다

  • 기사입력 : 2020-09-01 0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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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즈음 전통적인 상소문(上疏文)의 어투를 빌려 대통령에게 국민청원을 한 ‘시무(時務) 7조’라는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조은산이라는 사람은 공을 들여 상소문 형식으로 글을 지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득한 옛날 중국에서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시대부터 상소가 있었다. 신하의 보고, 건의, 비판 등이 다 상소였다. 중국 고대의 정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서경(書經)’에는 상소문 형식의 글이 많이 들어 있고, 춘추시대 역사서인 ‘춘추(春秋)’에도 상소문 형식의 글이 많이 들어 있다. 다만 그때는 상소문 등의 명칭이 없었다. 상소(上疏)라 할 때의 소(疏)자를 쓴 것은 삼국시대 다음의 진(晉)나라 때부터다. 후대에 와서 명칭이 점차 많아져 소 이외에도 차자(箚子), 계(啓), 전(箋), 표(表), 봉사(封事) 등의 명칭이 다양하다.

    소(疏)라는 글자에는 ‘통하다’, ‘조목조목 적다’, ‘아뢰다’ 등의 뜻이 있다. ‘상소한다’, ‘소를 올린다’라는 말은 되지만, 흔히 쓰는 ‘상소를 올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상소문은 문학적인 가치가 적다 하여 한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사실은 문학적인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글이다. 선비가 임금을 감동시켜 자기의 뜻이 관철되게 하기 위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자신의 학식을 다 동원하고 수사학적인 기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지은 글이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선비정신이 가장 강하고 풍부하게 담긴 글이 곧 상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위로 대신으로부터 아래로 평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임금에게 상소해서 건의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 신하들이 상소문을 올리면, 임금은 읽어 보고 반드시 비답(批答)이라는 상소문에 대한 답변을 내렸으니, 상하가 잘 소통되는 나라였다.

    선비들의 문집에는 상소문이 많이 실려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상소문이 많이 실려 있다.

    강직한 신하들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같은 주장의 상소를 연달아 20회, 30회씩 올리기도 했다. 심한 경우 대궐문 앞에서 거적대기를 깔고 밤을 지새우는 복합상소(伏閤上疏)를 하기도 하고, 자기의 의견이 틀리면 자기를 죽여 달라고 손에 도끼를 들고 상소를 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하기도 했다. 조선왕조 역사에서 목숨을 걸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 공격한 상소문으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단성소(丹城疏)’가 유명하다.

    선비들은 자기를 수양하고 나아가 남을 다스려 세상을 사람이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임금에게 건의를 하고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 하고 바로 상소를 해서 극도로 간하여 바로잡으려고 했다.

    우리 조상들이 전해왔던 상소를 해서 임금의 잘못을 서슴없이 바로잡는 전통이 오늘날 잘 계승되어 국정이 바른 길로 가도록 각자 참여하기를 바란다.

    * 上 : 윗 상. 올릴 상. * 疏 : 성길 소. 통할 소. * 極 : 극할 극. * 諫 : 간할 간.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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