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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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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택배기사는 오늘도 달린다- 이준희(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20-08-26 20: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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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배기사들은 천둥과 번개가 쳐도,/폭우나 폭설이 쏟아져도,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어도,/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어김없이 문 앞까지 갖다 놓습니다./우리는 힘들게 계단을 올라온 택배기사에게 다정한 말이나 시원한 물이라도/ 건네고 싶지만, 코로나 19 발생 후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박미산의 시 ‘택배기사’ 중 일부)

    예전 ‘태풍이 불어도 철가방은 달린다’는 말이 유행했다면 요즘은 ‘폭염이 쏟아져도 택배기사는 달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택배기사들은 쉬는 날 없이 고객들이 주문한 물품을 단 1초라도 빨리 전하기 위해 내달리기 때문이다.

    연일 30℃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땀에 절어 소금꽃이 하얗게 핀 윗옷과 땀 냄새는 이들이 하루종일 얼마나 쉼 없이 달렸는지를 짐작케 한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올 상반기 택배 물량이 대폭 증가하면서 이들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대표적인 택배회사 중 하나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3% 증가했다.

    택배 물량이 늘어난 만큼 기사당 평균 배송 물량도 30%가량 늘었다. 이들이 고객들에게 배송하는 하루 평균 물량은 올 상반기 기준 대략 300~400여 개. 오전 6~7시쯤 출근해서 물품을 분류해 차에 싣는 일명 ‘까대기’를 한 후 점심 무렵 출발하면 밤 8~9시 되어서야 일을 마친다고 한다. 이런 택배 기사들이 지난 14일 하루 쉬었다.

    국내에 택배사업이 도입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휴무일(8월 14일 택배 없는 날)을 가진 셈이다. 도입 배경은 택배 기사들의 과로·과로사였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증가로 주문량이 크게 늘면서 택배사 대리점과 도급·위탁을 맺은 택배 기사들이 자신의 몸은 돌보지도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다 쓰러졌다. 올 상반기에만 7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올해 1~6월 업무상 사망한 택배 기사 9명 중 7명이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이었다.

    택배기사는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로 분류돼 노동자로도 인정받지도 못한다. 따라서 휴가도 야근수당도 없다. 주 40시간 근무는 이들에게 꿈같은 얘기다.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 만약 하루라도 쉬는 날이면 대체배송을 위해 배송수수료의 1.5배가 넘는 1200~1300원을 물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택배 기사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국회와 본사에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었다. 20대 국회에서 택배 기사들의 삶을 보호하려는 생활물류서비스법안이 발의됐지만, 야당의 반대와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8월 중 재발의 계획을 밝힌 상태라고 한다. 이들의 요구는 배송수수료 인상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처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자신들은 무력함을 수없이 느낀다고 한다. 이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진정한 삶의 되돌려 주고 싶다.

    이번엔 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로젠 등 주요 택배사와 우체국 택배가 쉬었지만, 내년에는 전국의 모든 택배사가 동참했으면 한다. 이런 휴식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전국의 택배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휴식이 주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준희(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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