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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3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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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42) 사주위공(四周圍攻)

-사방에서 포위해서 공격하다

  • 기사입력 : 2020-08-25 0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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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주석 모택동(毛澤東)이 장개석(蔣介石)과 투쟁해서 이겨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그는 투쟁하는 데는 능력이 출중했지만 나라를 다스릴 줄을 몰랐다. 그래서 추진하는 정책마다 실패해 경제가 점점 나빠졌다. 식량이 모자라 3년 동안 5000만명이 굶어 죽었다.

    또 국가를 세울 때는 돌아가면서 최고지도자 자리를 맡을 줄 알았는데 혼자서만 계속 맡고 있으니 다른 지도자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그 가운데서도 경제를 잘 아는 유소기(劉少奇)와 등소평(鄧小平)이 모택동의 실책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래서 1959년에 이르러 혼자 독점하던 세 자리 가운데서 국가주석은 유소기에게, 공산당 총서기는 등소평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공산당 주석만 맡기로 했다.

    두 사람이 경제정책을 주도하자 경제가 좋아지고 백성들 사이에 인기도 높아졌다.

    게다가 스탈린의 뒤를 이어 공산당 총서기가 된 후르시초프는 스탈린을 ‘인민의 적’이라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모택동은 자기도 스탈린 신세가 될 수 있겠다고 겁을 먹고 후르시초프를 수정주의라고 비난했다.

    모택동이 점점 수세에 몰리게 되자 1966년에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을 일으켰다. 자본주의와 수구파 봉건세력이 다시 일어나 공산주의를 그르치니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법이 필요 없고, 모택동의 말이 국가 최고의 법이었다. 10년 동안 지속된 문화대혁명은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대학이 10년 동안 문을 닫았고, 가치 있는 문헌, 문화재, 예술품 등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맞아 죽거나 자살한 학자, 예술가들이 수만명에 이른다.

    국가주석 유소기는 홍위병 학생들에게 끌려다니다가 결국 골병이 들어 죽었다. 등소평은 시골 농기구 공장의 직공으로 쫓겨났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내정되었던 노사(老舍)는 홍위병들의 폭력을 못 이겨 시내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6·25전쟁 때 중공군 총사령관으로 천군만마를 호령하던 팽덕회(彭德會)는 모택동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홍위병에게 맞아 죽었다.

    법과 원칙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비유하자면, 스포츠 경기의 심판이 규정에 의해서 심판을 봐야지 자기 감정에 따라 마음대로 심판을 봐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지금 대한민국의 감사원장이 감사한 내용이 집권당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축출하자는 말이 여당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왔다. 그러자 추종자와 친여 언론들이 사방에서 감사원장을 포위해서 공격하고 있다.

    감사원장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적법하게 처리하면 된다. 자기들의 의견과 맞지 않다고 헌법에 보장된 감사원장의 임기와 권한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 四 : 넉 사. * 周 : 두루 주. 주위 주. * 圍 : 두를 위. * 攻 : 칠 공.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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