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2년 12월 03일 (토)
전체메뉴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40) 충절지향(忠節之鄕)

-충절의 고을, 충성스럽고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 많은 고을

  • 기사입력 : 2020-08-11 07:46:28
  •   

  • 각 고을마다 자기 고을을 충절의 고향으로 내세우고자 노력하는데, 충절로는 진주만한 곳이 드물 것이다.

    그래서 충절은 곧 진주정신의 바탕이 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주의 충절을 이야기하면 의례히 임진왜란 중인 계사(癸巳 : 1593)년 7만 군관민의 진주성 순절과 의기 논개(論介)가 전부인양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진주의 충절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면 고려 전기 현종(顯宗) 때 거란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하공진(河拱辰), 강민첨(姜民瞻) 두 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공진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략 때 거란 장수를 만나 담판을 벌여 자신이 볼모로 되는 조건으로 거란군을 철수하게 하였다. 거란에 압송되어 가서 거란족이 세운 나라인 요(遼)나라 성종(成宗)의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았으나 “감히 우리 고려에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소”라며 끝까지 저항하다가 살해되었다. 거란 사람들이 다투어 그 심장과 간을 씹어 먹었다 한다.

    강민첨은 1019년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내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역시 공신에 봉해져 화상이 공신각에 걸리고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었고 자손들을 등용하였다.

    진양정씨(晋陽鄭氏) 가문의 정신열(鄭臣烈)도 병조판서로서 거란의 침략을 막아냈다고 한다.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는 진주의 대표적인 대성인 강씨, 하씨, 정씨 가문의 인물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진주를 대표적인 충절의 고향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공진의 출생지가 지금의 진주성 경내로 알려져 거기에 사적비를 세우고 그를 제사 지내는 경절사(擎節祠)를 그 옆으로 옮겨와 세워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 1896년부터 1910년까지 있었던 경상감영의 선화당(宣化堂) 건물을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경절사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선화당을 복원하는 것도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한 분의 사당을 굳이 다른 데로 옮기면서 그 자리에 선화당을 세울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진주 충절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분의 사당을 조선 말기에 생겨 잠시 존재했던 선화당 때문에 옮긴다는 것은 가치가 전도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요즈음 위대한 인물들과 연관이 있는 곳을 국가에서 잘 가꾸어 ‘애국교육기지(愛國敎育基地)’로 지정해 젊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좋은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국가민족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의 행적이나 유적지를 교육자료로 잘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 忠 : 충성 충. * 節 : 마디 절.

    * 之 : 갈 지. …의 지. * 鄕 : 고을 향.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