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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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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38) 굴슬구화(屈膝求和)

- 무릎을 굽히고서 평화를 구한다

  • 기사입력 : 2020-07-28 0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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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고려(高麗)시대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중국의 송(宋)나라는 북송(北宋)과 남송(南宋)으로 나누는데, 실제로는 북송이 완전히 망한 뒤 남송이 다시 선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정자(程子), 주자(朱子) 같은 학자나 구양수(歐陽脩), 소식(蘇軾) 같은 유명한 문학가가 활동했던 나라이고, 상업도 번성하고 예술도 발달한 나라였다. 그러나 국방이 안 되었다. 960년에 송나라가 건국되었는데, 북쪽의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에게 어마어마한 금은보화, 비단, 여자 등을 계속 바치면서 겨우 황제 나라의 지위를 유지했다.

    1115년에 흑룡강 유역의 여진족이 금(金)나라를 세웠다. 이 금나라가 송나라에 연합해서 요나라를 없애자고 요청해 오자 거기에 호응하여 1125년에 요나라를 없애버렸다. 요나라의 압박을 금나라가 제거해 주니 고마웠다.

    금나라는 연합작전을 해보고서 송나라 군대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로 몰아붙여 1126년에 송나라 서울 개봉(開封)을 함락시켜 상황 휘종(徽宗), 황제 흠종(欽宗)과 황후, 왕자, 공주, 비빈, 수백 명을 포로로 잡아 북쪽으로 끌고 갔다. 이때 왕자 한 사람이 포로가 되지 않아 송나라 황제로 즉위했는데 그가 곧 남송의 고종(高宗)이다.

    끌려간 황제와 황후 귀족 등은 노비처럼 천대받고 온갖 모욕을 받으며 살아갔다.

    그때 금나라는 군대로 송나라를 압박할 뿐만 아니라 송나라 조정에 내통하는 사람을 심어 송나라를 망칠 계획을 하였다. 그때 뽑힌 사람이 진회(秦檜)라는 역사에 이름 높은 간신이었다.

    진회는 끌려가 금나라 태종의 아우인 달라(撻懶)의 노비로 하사되었는데 붙임성이 좋아 이미 그 밑에서 참모로 발탁되어 일했다.

    금나라를 어렵게 탈출한 것처럼 가장해서 남송의 서울 임안(臨安 : 지금의 杭州)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의심을 했지만, 고종은 아버지 휘종과 어머니의 소식이 궁금하여 진회를 만나보았고 “편안하게 황제 노릇하게 해 드리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끌려 의심하지 않고 벼슬을 주었다.

    그리하여 진회는 18년 동안 정승을 하면서 평화협상이라는 미명 아래 내심으로 금나라를 위하면서 계속 송나라에 굴욕을 안겼다. 금나라에서 보내온 외교문서를 황제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받게 하였다. 진회는 금나라를 토벌하던 모든 군대를 철수시키고, 악비(岳飛) 같은 애국적인 명장들을 모함해서 죽이고, 조정에 자기의 당파만 다 심어 송나라를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그는 송나라의 최고 실권자 정승이었지만 사실은 금나라의 간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고종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를 신임하였고 그가 죽었을 때 그 집으로 문상을 가고, 신왕(申王)에 봉하고, 충헌(忠獻)이라는 시호를 내리기까지 했다.

    지금 대통령이 박지원씨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했는데, 아마도 우리 국가를 위해서보다 김정은이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라 임명한 것 아닌가 한다. 앞으로 이들이 정말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일할지 걱정이 앞선다.

    * 屈 : 굽힐 굴. * 膝 : 무릎 슬.

    * 求 : 구할 구. * 和 : 화평할 화.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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