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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희망의 바다로 환생한 마산만- 이종훈(정치팀장)

  • 기사입력 : 2020-06-22 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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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훈 정치팀장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마산 출신 시인 노산 이은상이 마산만을 그리며 지은 ‘가고파’의 첫머리이다. 1932년 그가 이화여전 교수로 재직할 때 썼다고 한다.

    마산은 예부터 물이 좋기로 으뜸이었으며, 당시 마산만은 아주 맑고 푸른 바다였다. 서울에서 특별 피서열차가 다닐 정도로 유명한 월포해수욕장이 있던 곳이며, 신라 말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바닷가에 월영대를 쌓아 백사장을 거닐면서 달구경과 뱃놀이를 즐겼던 곳이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동아일보 1934년 7월 5일 자에 ‘남조선 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희어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때 한목을 보게 된다’는 기사가 나올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매립이 되면서 월포해수욕장은 사라졌고,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맑고 푸른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마산만은 점차 죽어갔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후반까지 한일합섬이 입주하고 마산수출자유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 등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주변 해양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마산만은 자정능력을 상실해 1975년 가포해수욕장 폐쇄, 1979년 수산물 채취 금지, 1981년 대규모 적조 발생 등으로 수영이 금지되고, 낚시도 할 수 없는 ‘죽음의 바다’라는 오명을 얻었다.

    수질이 갈수록 악화되자 198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지난 2004년 마산만을 살리기 위한 ‘마산만 특별관리해역 관리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육상오염물질의 장기적인 총량관리를 위해 2007년 제1차 마산만 연안오염총량관리제가 추진됐다. 민·관·산·학들의 협업을 통한 많은 노력으로 ‘죽음의 바다’로 불리던 마산만 수질이 점차 개선됐고 40년 만에 수영할 수 있는 바다가 됐다.

    마산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시민들은 마산만에서 수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50대 중반인 필자도 어릴 적 오동동 다리 주변 등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가족과 함께 가포해수욕장에서 수영하고 근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한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마산이 고향인 허성무 창원시장도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돝섬 인근 바다에서 시민단체와 취재진 등 100여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인 3종경기 동호회원 10여명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마산만 수질이 깨끗하지 않으면 계획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허 시장은 이번 행사에 만족하지 않고 기후환경보좌관을 신설해 환경정책의 정무적 보좌 기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특례시 승격 등에 발맞춰 기후환경국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직접 매달 현장을 나가서 시민들과 함께 마산만 수질 개선사업 추진사항을 체크하고, 생태계 조사에도 동참하겠다고 공언했다.

    허 시장이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보여준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수질이 더욱 개선돼 내년에는 철인 3종 경기 등 수영 대회가 마산만에서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마산만 수질을 개선하려면 시장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필요하다. 해양 쓰레기 되가져오기, 일회용품 자제 등 작은 실천 하나가 마산만을 희망의 바다로 되살리는 밑거름이 된다.

    이종훈(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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