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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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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낭만적 삶과 어린 시절- 조화진(소설가)

  • 기사입력 : 2020-04-30 20: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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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화진 소설가

    긴긴 겨울 푹 빠져 지낸 건 입소문으로 핫했던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캐나다 드라마 ‘빨강머리 앤’이었다. 게다가 오래 입원한 병실에서 이 드라마는 시간 죽이기에 딱이었다. 봤든 안 봤든 ‘빨강머리 앤’이라는 제목만큼은 너무나 익숙한 책으로, 만화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고아인 ‘앤’은 독신으로 늙어가는 남매에게 입양된다. 원래 남자아이를 입양하기로 돼 있는 남매에게 소개자의 실수로 입양된 것인데, 앤의 타고난 낭만적이고 자연 탐미적이고 명랑하면서 긍정적인 성격이 결국은 외롭게 늙어가는 남매에게 밤하늘의 빛처럼 스며들어 사랑하는 소중한 가족이 된다는 휴먼 드라마다. 원작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인데, 어린 시절을 거치며 성숙해가는 삶을 낭만적 투시로만 보지 않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드라마의 교훈 같은 진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삶에 관한한 역경과 고난은 필수지만 어떻게든 견디고 헤쳐 나가다 보면 자신의 고유한 삶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덧붙이자면 대게 유년의 기억은 파스텔 톤이다. 먼 기억이기에 덧칠해서 아름다운 기억만이 맨 위에 남아 있는 까닭이다. 끔찍했던 불행도 아름다운 매혹으로 미화시키는 게 과거이지 않던가. 아픈 상처도 세월이 가면 잊히는 것은 그런 계기에서다. 인간에게는 쉬운 해결책인 ‘망각’이라는 것이 있으니 살기에 편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당시엔 설령 가슴 찢어지게 아팠던 이별일지라도, 또는 친구와 사소한 오해 끝에 싸우고 다시는 안 보게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굳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속 좁은 행동을 보였단 뒤늦은 후회에 화해하고 싶지만, 이별은 돌이킬 수 없고 친구와도 이미 멀어져버린 후다. 이러니 삶의 모든 것엔 ‘타이밍’이란 것이 있어서 아차 하면 놓쳐버리고 만다. 힘들고 불행한 기억도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어 지나서 생각하면 아름답게 뒤돌아봐지니 삶의 낭만적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어린애는 성장과정을 밞으며 차차 어른이 되어간다. 어린애가 사춘기를 겪고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의 대열에 들어서는 과정은 지나고 보면 짧지만, 본인은 어둑하고 혼란스럽고 길기만 하다. 그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낭만적 삶은 소설에나 있고 영화에나 있으며,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만 있다. 실제 삶은 리얼하고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인생을 낭만적으로 보는 사람은 분명 유아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자아의지가 잠재해 있다고 본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 라고 하는 말이 영화 대사에도 나오고 산문에도 나오고 여러 곳에서 나온다. 현재의 자신의 삶은 자신이 과거에 만들어온 것이다.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되고, 탓할 수도 없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누군가는 살아내야 하고 누군가는 견뎌야 한다. 그 가운데 낭만을 찾아나서는 게 일반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야 살맛이 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은 다르게 보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삶이다. 부모 도움 없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쨌든 태어났으니 자람과 동시에 길러지는 것이라서 요즘은 금수저, 흙수저 식으로 따지곤 한다. 수동적에서 자발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는 그만큼 중요한 과정이다. 낭만적 삶은 어린 시절의 꿈처럼 스스로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조화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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