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2년 08월 1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응답하라 용강리- 오영민(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0-04-02 20:21:56
  •   

  • 산이 붉다. 아니다 진분홍이다. 천지가 온통 진달래꽃으로 잔치가 열렸으니, 이맘때면 내 고향 용강리의 구룡산 아래 아침 안개는 자락 자락 꽃 잔치에 쉬이 걷힐 것이다.

    응답하라 1984, 나의 유년 나의 열세 살… 그 시절 언덕 너머로 잠시 돌아가 본다. 기찻길 옆 작은 집 한 채, 다섯 아이가 뛰어놀고 대문은 늘 열려 있었다. 탱자나무 몇 그루 돌담 옆에 기대서고, 기찻길 옆 언덕에는 온통 개나리꽃 나무 어깨동무 중이다.

    흑백으로 기억을 더듬어 앨범 보듯 넘겨본다. 아버지는 늘 지게를 메고 장화를 신으셨고, 어머니는 늘 대야를 이고 시장을 오고 갔었던, 그럴 때마다 다섯 아이는 대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지게와 대야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기대하며 기다렸었다.

    아버지의 지게 속에는 산딸기나 머루 같은 산과일이 있었고, 어머니의 대야 속에는 사탕이나 과자가 다섯 아이의 기대를 늘 저버리지 않고 담겨 있었으니, 그 시절의 기억은 진한 그리움으로 마냥 젖는다.

    그래 그랬지. 그 시절 나는 코 묻은 소맷자락도 창피하지 않았고, 몇 번을 기워 신은 양말 끝으로 발가락이 살짝 나와도,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학교를 다녀도 즐겁기만 했었지.

    발끝에 흐드러진 토끼풀에서 네잎클로버의 행운도 함께 찾으며 동화책이나 일기장의 갈피마다 끼워두기도 했었지.

    징검돌이 놓여 있던 시냇가에서 동무들과 종일 물놀이를 하고 나면 냇물에 동동 떠내려오는 햇살과 함께 노래 부르던 나의 유년이 음표처럼 통통 튀며 재잘재잘 거렸지.

    그해 겨울, 아버지의 구두 한 짝만 마루 밑으로 돌아오던 날은 선명하게 들려오던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긴 이별과 함께 열세 살 어린 나에게 삼베옷을 입혔고, 난생처음 입어보는 그 삼베옷의 까슬함이 싫어서 나는 울기만 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그 이별의 예감이 더 싫어서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열세 살은 나의 고향은 기억을 멈춘다. 그립다, 그립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지만 굳이 가슴에 묻어두기로 한다.

    옛 동무들과 오랜만에 고향 언덕에서 약속이 잡힌 저녁, 고향의 노래 ‘가고파’를 들으며 잠시 갓길에 차를 멈춘다.

    따뜻한 내 고향의 남쪽 언덕이 지척인데, 꽃길만 따라가도 가고픈 길 나오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용강리로 들어서는 발길을 잠시 멈추니, 빨간 버스가 다니던 흙길은 사라지고 아스팔트길이 세련되게 펼쳐져 있다.

    변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언덕 위로 나부끼는 현수막을 보니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일제히 번호표를 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림살이 걱정이 공약으로 휘날린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우리가 아니어야 한다.

    경제력으로 성장하고 지식으로 앞서고 부족한 자원 대신 인력으로, 세계를 상대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영웅만 있어도 우리는 지켜내지 않았던가? 내 나라 대한민국을! 이순신도 세종대왕도 유관순도 없는 지금의 내 나라를 위해 나는 선택을 할 것이다.

    단 한 명의 영웅을 찾아서 이 환장할 봄날에.

    오영민(시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