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2년 08월 1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화초를 돌보듯- 이진숙(소설가)

  • 기사입력 : 2020-03-19 20:19:41
  •   

  • 아침에 눈을 뜨면 물 한 잔을 마시고 베란다 창을 연다.

    앞베란다에 작은 화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난 장날에 사들고 온 해국, 기린초, 아이비, 시클라멘, 그러고도 두어 개가 더 있다. 어찌된 일인지 매번 나는 화초 키우기에 실패를 했다. 때맞춰 물을 주지 못하거나 화초마다의 기분을 살피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들일 만큼 한가하거나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꽃집에서 갓 사왔을 때의 싱싱함을 잃어가는 화초를 보면서 다시는 집에서 화초 따위를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남의 집을 방문하면 잘 가꿔진 화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예쁜 장식품이나 가족사진, 고급가구에도 눈이 가지만 베란다를 가득 채운 화초에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문다. 그 집 화초들을 구경하며 하나하나 이름을 묻고 어떻게 키우는지도 캐묻곤 한다. 뭐, 특별한 비법이 없다는 게 공통적인 대답이었다. 제때 물을 주고 자주 들여다보고 쓰다듬어주며 아기를 키울 때처럼 관심을 가져준다고들 대답했다.

    맑은 공기를 쐬어주면 화초가 좋아한다는 어느 분의 말을 듣고는 아침에 일어나 창을 활짝 열어주었다. 밤새 갇혔던 집안 텁텁한 공기가 창밖 공기와 자리바꿈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맑은 날은 상쾌함에 콧속까지 시큰해지고 안개 자욱한 날이나 비 오는 날은 바닷가에 온 것처럼 촉촉하다. 바람을 만난 화초는 일제히 흔들린다.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맑은 날은 맑은 날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흔들림이 다르고 내는 소리도 다르다.

    가만히 화초를 들여다보면 이파리와 겉흙의 상태만으로 목이 마른지 알 것도 같다. 물 빠짐이 빠른 화분은 하루에 한 번 샤워하듯 물을 뿌려주고 물을 적게 주는 것들은 젖은 물수건으로 잎사귀만 닦아 준다. 아이비 이파리를 닦는 일은 내 손가락 끝을 간질거리게 한다. ‘거 비싼 것도 아닌데 어지간히 정성을 들인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모르시는 말씀, 살아있는 건 뭐라도 소중한 거라고!

    만나는 이들을 한 그루 화초로 바라보면 어떨까. 누군가는 튼튼한 이파리를 가진 수국일 테고, 또 누군 청초하고 가냘픈 난일 테고, 흔하디흔한 이파리를 가진 화초도 있다.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더욱 또렷이 보인다. 어딘지 지치고 시들어 보이는 이가 있고, 벌레에 갉아 먹혀 상처 많은 이도 있다. 따스한 눈빛과 손길에 위로받아야 할 이들이 있는가 하면 때론 무관심이 필요한 이도 있다.

    어느 날 휴대전화 주소록을 열어보고는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기억나지 않은 이도 수두룩했다. 주소록에 담긴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보면서 인연이 다한 이들을 정리했다. 살면서 너무 많은 이들과 만나려 애쓰지 않겠다며 다짐도 했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넘치는 만남은 오히려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만다. 적지만 진실하며 보다 성숙한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내 집 베란다까지 오게 된 올망졸망 화초들만으로 나의 정원은 훌륭하다. 작고 어여쁜 저것들과 눈 맞추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즐겁다. 맑은 공기와 물과 적당한 관심을 고루 나누며 저들이 나날이 푸르고 무성해지기길 지켜보련다.

    이진숙(소설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