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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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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모과와 성형미인-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20-03-05 20: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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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레길을 가다 모과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모과나무는 숲과 무덤의 경계에 돌올하니 홀로 서 있었다. 잡풀이 모과나무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나 열매가 익어 떨어져 썩어가는 데도 아무도 거둬가지 않는 걸 보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토종 야생모과나무인가 보다.

    모과향기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횡재를 만난 듯 풀숲의 모과 몇 개를 주워왔다. 울퉁불퉁 둔탁한 무게감과 황금빛이 어우러져 마치 제련되지 않은 황금덩이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나는 모과향기를 최대한 오래도록 즐길 요량으로 내 책상 위 숯 바구니 위에 올려놓았다. 온 방안에 모과향기가 퍼져 향기로웠다. 나는 장롱 문을 활짝 열어 옷과 이부자리에 모과향기가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호사를 누렸다.

    모과의 이력은 참으로 특이하다. 생육환경에 따라 크기와 당도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모양과 향기를 반복 복제하는 대부분의 과일나무와는 다르게 한 나무에서 한날한시에 따도 모양이 제각각이다. 겉모양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양의 무질서가 타고난 본성이라니! 무질서가 뿜어내는 강력한 향기의 질서는 참으로 오묘하다.

    가을날 제각각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숲속의 섬처럼 홀로 서 있는 모과나무는 시 같다. 운명적으로 동어반복이 금지된 시인 같다.

    모과는 모양의 무질서 때문인지 예부터 못생김의 상징이 되었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어느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기피언어가 돼버린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꽃향기와 비교되지 않는 독특한 향기와 수피의 아름다움과 비타민C와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하여 감기예방이나 피로회복에 좋고 기침가래를 멎게 해주는 모과만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약성은 모양에 가려 뒷전이다.

    누군가가 무심코 한 말 한마디에 인생이 좌우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청소년기에 “네가 잠든 사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남편 얼굴이 바뀐다)”며 공공연히 외모를 내세워 공부를 채근하고,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은 미모의 남녀가 차지하는 것이 공식처럼 당연시되고 못생김을 코미디의 우스갯거리로 희화해버리기 일쑤니, 연예인이나 일반인이나 젊으나 늙으나 지병을 고치려 병원으로 가듯 돈다발을 들고 성형외과로 몰려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갓 피어난 꽃송이에 비할 만한 여고생들 사이에서 화장하는 유행이 생긴 것이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쏠리는 시기라고 백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일생에서 단 한 번 누릴 수 있는 풋풋함·청순함의 아름다움을 성인용 화장품으로 애써 지운 것 같은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의 모습은, 아무리 뜯어고쳐도 본래 모습보다 못하기가 일쑤인 성형인을 보는 것처럼 어색해서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우리나라 화장품의 질이 세계 수준급이니 성형기술이 세계 수준급이니 말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 외모지상주의 의식이 세계 수준급이고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세계 수준급으로 많다는 증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몸과 목소리로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겠다는 늙은 여가수가 예쁘지 않아서 참으로 아름다웠다. 모과에게 미안하다 말했다.

    조은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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