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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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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이 들어간다는 것- 왕혜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20-01-02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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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 후 4개월, 어떻게 살았는지 차분하게 돌아볼 시간도 없이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나는 아직 젊고 심각하게 아픈 곳도 없다는 자신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십이지궤양으로 퇴직 직후 두 달 가까이를 병원 약으로 살았고, 지간신경종이라는 발바닥 이상으로 전국의 둘레길을 다 걸어보겠다던 야심찬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생활리듬이 깨져서인지 막판엔 다래끼까지 올라왔다. 그야말로 몸이 총체적인 반란(?)을 일으켜 그렇게 운동해도 안 빠지던 살이 4킬로그램이나 훅 빠졌다.

    그 와중에 약을 잔뜩 싸들고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10월 초엔 살던 곳을 떠나 이사까지 했다. 책 내느라 바빠 건강검진도 못하고 퇴직을 했는데, 몸에 이상이 오고서야 부랴사랴 검사를 받는다 어쩐다 부산을 떨다 조금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어머니가 넘어져 치골 골절, 움직이지도 못하는 90 노인을 병원으로, 다시 요양병원으로 입·퇴원, 간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상황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퇴직만 하면 날개를 달 줄 알았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삶에는 얼마나 많은 복병이 숨어있는지, 세상사 맘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실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2018년에는 고령 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사회가 초고령 사회라고 하니 6년 후에는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거라는 이 기막힌 현실! 나 자신 이미 노인의 나이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이런 상황은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우리 세대는 그나마 부모를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잘 모셔야 한다는 기본적인 효 의식이라도 갖고 있지만, 우리 자식 세대에는 그런 희망 자체를 접어야 할 정도로 사회도 급변했고 가치기준도 많이 달라졌다. 건강수명은 75세까지이고 그 이후부터는 골골거리며 80세, 90세까지 살아간다는 얘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말도, ‘구구팔팔이삼사(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 죽는 것)’라는 건배사도 가슴에 팍 팍 와서 꽂힌다. ‘오래 살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이제는 새로운 신앙이 되었다. TV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 먹거리 관련 프로그램이 괜히 봇물을 이루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해가 바뀌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한 살을 먹었다.

    요양병원에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정말 ‘애간장이 탄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해, 또 그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은 힘든 가운데서나마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웰다잉(well-dying)은 결국 웰빙(well-being)에 있다는 것. 웰빙(well-being) 없이는 웰다잉(well-dying)도 없다는 것.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생각들의 실천방안을 고민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다. 새해엔 모두에게 건강의 여신이 활짝 웃어주기를….

    왕혜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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