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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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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위와 풀- 유희선(시인)

  • 기사입력 : 2019-12-12 20: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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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 보는 인구가 줄고 있다. 시대 흐름이지만 나는 신문을 고집한다. 무엇보다 스크랩북 때문일 것이다. 스크랩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몇 번씩, 혹은 그 이상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늘 손닿는 곳에 가위를 두고 이십오 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면, 그 습관에는 뿌리 깊은 어떤 결핍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내 모습이 민망하지만 나는 가위질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그건 마치 나의 오래된 습관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고 과도한 의미부여 이기도 하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의 굽은 등처럼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차마 버릴 수 없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곤 한다. 그것이 텍스트이든 이미지이든 상관없이 반듯하게 가위질을 하는 순간은 마치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는 것과도 같아서 뇌리에 오랫동안 남는다. 각인 과정은 그밖에도 풀칠을 할 때나 대학노트로 한 권이 완성될 때까지 여러 단계로 이어진다. 폰 속에 계속 쌓여만 가는 사진을 쉽게 삭제하지 못하는 것이나, 책꽂이에 꽂힌 책들과 수시로 눈을 맞추다 보면 펼치지 않아도 쉽게 망각되지 않는 것과도 비슷한 현상일 수도 있다.

    오늘도 신문을 펼친다. 몇몇 기사를 읽고 눈에 띄는 하나의 이미지로 나의 가위가 미끄러져간다. 마치 나무를 타는 아이의 맨발이거나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작은 배처럼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의 힘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앙리 마티스의 밝고 경쾌한 그림을 각별히 좋아하는 나의 성향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며 생의 끝까지 성실하게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 지독한 관절염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 힘들 때조차 그는 손에다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쉽지 않자 흰 종이에 물감을 칠해서 색종이를 만들고 가위로 오려서 그 색면(色面)들을 붙이는 콜라주 작업에 몰두했다. 마티스는 이런 작업 과정이 연필이나 붓으로 그린 것과는 다르게 조각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각가가 나무나 돌을 깎고 다듬듯이 가위로 오려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고통을 잊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새로움과 소소한 행복을 찾을 것인가? 나는 결코 위대한 화가의 가위질과 나의 가위질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온갖 시끄러움과 잔혹함의 축소판인 신문 속에서도 미소 짓고 감동하며, 숨 쉴 수 있는 구멍들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일상과 입체적으로 접속하는 것이다. 그러한 살뜰한 접촉과 경험의 지속성이 한 권의 결과물로 완성되면, 그것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평범한 한 사람의 시선이 만들어지고 누군가에게 건네 줄 선물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 모두가 실제의 가위와 풀만 들지 않았을 뿐 모든 관계 속에서 부지런히 잘라내고 또 붙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가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풀로 붙일 때는 더욱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경험상, 가위가 직관이라면 풀의 역할은 작위에 가깝다. 이미 둥근 것들을 내용으로 품고 있기에 그 각각을 붙일 때는 직선을 유지하는 것이 담백하고 싫증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가령 선비의 사랑방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사방탁자나 문갑과 같은 목가구를 배치하듯 그런 여백을 살린 한 권의 스크랩북이 내게는 작은 창조의 시작이 기도 했다. 오랜 외국 생활로 겪었던 모국어에 관한 결핍은 아직 꺼내지도 못했지만….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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