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2월 27일 (화)
전체메뉴

(566) 전세진적(傳世珍籍)- 후세에 전할 만한 진귀한 책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01-13 00:00:00
  •   
  • 메인이미지

    조선시대 세종대왕(世宗大王)은 한글 창제한 업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학문을 크게 일으켰다.

    그는 집현전(集賢殿)이란 연구기관을 만들어 젊고 실력 있는 학자들을 발탁해 전문적으로 연구와 저술만 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젊고 실력 있는 학자들이 과거에 합격해 벼슬에 나오면 직무에 얽매여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30명 내외의 학자들을 선발해 녹봉(祿俸)은 그대로 주면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주도했음은 물론이고 ‘치평요람(治平要覽)’, ‘동국정운(東國正韻)’ 등 수많은 책을 편찬해 냈다.

    책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세종대왕은 직접 편찬 과정의 토론에 참여했고 마지막 교정은 반드시 자신이 직접 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창안했는데, 관리들에게 녹봉은 그대로 주면서 휴가를 줘 조용한 곳에 가서 독서와 토론에만 전념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퇴계(退溪)나 율곡(栗谷) 같은 대학자들이 모두 이 사가독서의 혜택을 입었다. 세계 최초의 연구년 제도가 아닌가 한다.

    세종 자신이 워낙 공부를 좋아해 임금이 강의 듣는 학교인 경연(經筵)에 자주 나왔는데, 어떤 때는 아침에 나오고, 오전에 나오고, 오후에 나오고, 또 밤에 나오는 등 하루 네 번씩 나오는 날도 있었다.

    세종대왕이 명하여 1420년 활자로 간행, 신하들과 함께 공부해 손때가 묻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지난해 10월 16일 상하이도서관에서 발견됐다.

    그 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명해 우리나라 학자들이 공부하기 편리하도록 주석을 새로 붙여 편찬하도록 해 세종 20(1438)년에 갑인자(甲寅字)로 간행했다.

    중국에서는 그 뒤에 주석서인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이 나왔다. 자치통감강목에 대한 주석서가 나온 것은 우리나라보다 늦었다.

    세종대왕이 신하들과 공부하던 이 책은, 그 뒤 한씨(韓氏), 홍씨(洪氏) 집안을 거쳐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에게 약탈을 당해 한동안 일본에 있었다.

    1920년대 중국의 학자이자 장서가인 서서(徐恕)에 의해서 수집돼 중국으로 갔다가 지금 상하이박물관에 안착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진귀한 책이 난리를 만나 다른 나라를 유랑하다가 그곳에 정착한 것은 우리의 슬픈 역사를 대변한다.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외교적인 통로를 통해 우리나라로 반환돼 우리 손에서 자손 대대로 전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

    * 傳 : 전할 전. * 世 : 세상 세.

    * 珍 : 보배 진. * 籍 : 책 적.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문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