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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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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우순풍조(雨順風調)- 비가 때맞춰 오고 바람이 알맞게 불다

  • 기사입력 : 2013-10-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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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절이 즐겁지 않으면 나이가 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릴 때는 명절이 매우 손꼽아 기다려진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극도로 궁핍하던 시절에 새 옷 한 벌 얻어 입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59년 필자가 여덟 살이던 해 7월 16일 부친이 세상을 떠나 어린 마음에도 슬프고 암울했는데, 두 달 뒤면 추석이라 슬픈 가운데도 그래도 즐거움이 될 수 있어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추석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추석날 새벽 잠을 깨어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람비가 쳐서 마루고 방이고 비에 다 젖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바람은 점점 더 세어지고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도저히 본채 마루에 차례상을 차릴 수 없어 한참 기다렸다. 10분쯤 기다려도 비와 바람이 그치지 않아 할 수 없이 서향으로 된 아래채에서 겨우 추석 차례를 모신 적이 있었다. 오후가 되자 비도 그치고 바람도 약해졌다. 밖에 나가봤더니 초가지붕 이엉이 걷히고, 동네 앞 도로와 논은 모두 물에 잠기었다. 지붕 위에 갈기 위해 얹어놓았던 기왓장이 다 날아갔다고 했다. 성묘를 가려고 하니, 길이 물에 잠기어 가지 못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태풍이 바로 사라호 태풍으로 1904년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을 실시한 이후로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전국에 사망자와 실종자가 거의 900명, 전국에 이재민이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963년 계묘년에는 음력 4월 15일부터 8월 15일 추석까지 좀 과장해서 비가 안 온 날이 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아침마다 소 먹이러 높은 산에 가서 비오는 양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예년과 같이 산 밑에 있는 논에 물이 들어 벼만 잠기더니, 얼마 지나자 배수장까지 물이 차올랐고, 그 얼마 뒤에는 둑 자체가 아예 물속에 잠겨 둑이 보이지 않으며 망망대해(茫茫大海)가 되어 버렸다.

    두 차례의 큰 재해를 어릴 때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자연재해가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정보가 발달해도 사람이 먹고사는 것은 대부분 농업에서 나온다. 농업은 기후(氣候), 기상(氣象)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무리 농민이 농사에 정성을 들여도 기상이 좋지 않으면, 잘될 수가 없다.

    인공강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아직도 기상변화는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기상이변의 피해를 막는 방법은, 사전에 대비를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운명을 아는 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담장 밑에 서 있지 않는다.(知命者, 不立乎巖墻之下)”라고 했다. 위험한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고 위험한 지역을 미리 피하는 것이 방법이다.

    지금쯤은 예측해도 되겠지만, 올해는 1945년 해방된 이후로 1988년에 이어 두 번째로 태풍이나 홍수 없이 보낸 한 해였다고 한다. 여름에 조금 가물었지만 재난은 없었다. 가물었기 때문에 벼나 과일은 더 작황이 좋다고 한다. 올가을 풍년이 예상된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사용자와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싸우는데, 싸우면 본래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법인데, 그래도 하늘이 앞으로 잘하라고 그러는지, 올해는 우리나라에게 관대하게 대해 주는 것 같다.

    * 雨 : 비 우. * 順 : 따를 순. * 風 : 바람 풍. * 調 : 고를 조.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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