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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2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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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과 추사/김유경기자

  • 기사입력 : 2012-05-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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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부터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는 고마운 이에게 필묵으로 쓴 좋은 글귀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었다. 격변의 세월이 흐르고 현대에 이르러, 중국은 이 전통을 지켜온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그 덕에 중국은 서예 작품 하나 걸리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수요층이 두텁게 형성되었지만 한국의 서예는 대중과 멀어져 외딴섬처럼 부유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이런 문화의 차이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그 명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왕희지의 자그마한 서첩 제본은 500억원을 호가하는 반면 추사 김정희의 원작 병풍은 3~4억원에 머물러 있다.

    지난 8일부터 사흘간, 베이징 중국서법원에서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문자문명전이 열렸다. 이 전시를 통해 양국작가들이 제시한 서예술의 미래에 대한 탐색은 치열했고 또 그만큼 뜻깊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던 도중,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서예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인력을 충분히 양성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서예과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희소하다. 지난날 원광대와 계명대, 대구예술대학 등에 단일 학부가 존재했지만 현재는 대부분 미술학부로 편입되고 말았다. 서예 작품의 수요가 적으니 서예가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에 반해 베이징에서 목격한 중국 서예가들의 윤택한 삶과 그들을 대하는 자국민들의 존경 어린 시선, 훌륭한 서예가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의 모습은 실로 낯선 풍경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그런 이국적 풍토 저변에는 중국인들이 가진 한자와 서예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서체의 한자 간판이 수놓은 베이징의 거리는 자국 문화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그려진 풍광인 것이다.

    한 중국작가는 “한국인들은 이렇게 훌륭한 서예술을 두고 왜 그토록 리히텐슈타인(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은닉 수단으로 쓰였다는 의혹에 휩싸인 그림 ‘행복한 눈물’의 작가)에 열광하는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 물음에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서예가들의 자구 노력도 중요하지만, 서예를 보는 대중의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엄연히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추사와 리히텐슈타인을 제대로 구분해 내지 못하고 있다.

    김유경기자(문화체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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