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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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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쇠를 깎는 마을, 창원 - 남선희 (계영윈테크 대표·소설가)

  • 기사입력 : 2020-11-23 21: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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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씩 나는 어떤 예술작품보다 쇠를 깎아 만든 부품에 매료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 예술품이라고 단정짓고 싶다. 그것의 정밀성, 균형미, 그리고 조합된 부품들이 미세한 공차를 유지하며 유려하게 움직일 때는 묘한 흥분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1970년대 후반에 창원에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오래 이곳 창원에 묻혀 있던 쇠의 씨앗이 때를 만나 발아된 거라 믿고 싶다. 창원에 성산패총 야철지가 청동기 시대부터 존재했고 통일신라시대까지 이어져 온 역사가 있고, 그 쇳물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지하로 지하로 흐르다가 오늘날 분출된 결과물이 창원공단이 아닐까.

    공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장비는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리고 거기 기능공들이 함께 성장해왔다. 그들은 오십여 년 전, 조잡한 범용장비에서 손의 감각을 익히기 시작해 장비의 발전 속도를 따라 한층 세련되고 고도화된 기능을 체득했다. 그들이 매일 깎아내는 쇠제품들을 한 번쯤 눈여겨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어느 완성품에 들어가는 소모품으로 단순히 버튼만 누르면 찍혀져 나온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큰 오해다. 그것은 노련한 주부가 과일을 깎아내듯이 예리한 도구와 숙련된 솜씨로 깎아내어 만들어 낸 예술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늦은 가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고 싶지 않다. 단풍은 그저 물드는 게 아니다. 바람과 햇볕을 안고 비에 씻기는 세월을 머금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수십만 번의 반복을 통해 능통에 이른 기능공들이 만들어 낸 부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거기에서 분명 가슴 찌릿한 정밀한 아름다움과 마주칠 것이다.

    어느 무명 시인의 시 한구절을 소개해 본다. 한 여름 땡볕보다/ 여름 지난 따스한 볕과/선한 바람이 씸김굿을 하면/물속에서는/제대로 아문 상처가/ 하얀 메밀꽃으로 피어나는데/ 나는 얼마나 풍장되어야만 한줌 소금이 되는가. -심재곤 ‘염전’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끊임없이 야철지의 후손으로 쇠를 깎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진짜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그들 역시 이 시처럼 그저 소금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남선희 (계영윈테크 대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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