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창원시 의창구 창원소방서 내 신월119안전센터를 찾아 몰래 기증한 한 남성의 헌혈증서 48장을 소방대원이 들어보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 어리둥절했다가 편지를 읽고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죠. 너무 감사합니다.”

윤문환 창원소방서 신월119안전센터장은 23일 통화에서 “소방관 생활 30년 가까이 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며 한 시민에게 연신 감사한 마음을 대신 전했다.

윤 센터장이 감동 받은 사연은 이랬다. 지난 19일 정오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 창원소방서 내 신월119안전센터를 찾았다.

창원 시민이 헌혈증서와 함께 건넨 편지.

이 남성은 “좋은 곳에 써 달라”고 말하면서 음료수 1박스와 흰 봉투를 한 소방대원에게 전한 뒤 소방관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상남동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고 한다. 달리기라면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뒤지지 않는 소방대원들이 “거기 좀 서 보세요”라고 외치며 뒤쫓았지만 결국 놓쳤다고.

이 남성이 건넨 편지봉투 안에는 헌혈증 한 뭉치가 가득했다. 한 장 한 장 꺼내 세어 보니 기부자가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17년 동안 헌혈하며 모은 증서 48장이었다.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소방관들을 눈물 글썽이게 만든 건 헌혈증과 함께 들어 있던 편지 한 장이었다. 23일 센터를 직접 찾은 기자에게 건네 보여준 이 남성의 편지에는 ‘소방관 여러분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늘 감사하며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항상 시민을 생각하며 소중한 생명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헌혈증은 소방관 및 소방가족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윤 센터장은 “소방관들이 모은 헌혈증을 시민들에게 준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시민이 직접 소방서를 찾아와 헌혈증을 주고 떠난 건 처음이다”며 “소방관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 건 물론이고 앞으로 시민들을 위해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다 같이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창원소방서 관계자는 “헌혈증 사용처를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 문의하고 있다”며 “기부한 시민의 선한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취지에 맞게 소중히 사용하겠다. 신문기사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