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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이준희(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20-10-22 19: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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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희 사회부장

    1791년(정조15년) 1월,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고 창덕궁으로 돌아오던 국왕의 행차를 흑산도 백성 김이수가 꽹과리를 치며 막아섰다. 행차를 막은 이유는 흑산도에 부과된 잘못된 세금(닥나무 특산물)을 철회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역에 없는 특산물을 조정에 세금으로 바치는 잘못된 공납을 바로 잡아 달라는 ‘격쟁(擊錚)’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은 백성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정을 국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합법적인 소원제도였다. 조선 전기에 있던 신문고의 뒤를 이어 16세기 중종·명종 연간에 정착되었다. 상언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백성이 국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이었다면, 격쟁은 국왕의 행차 길에 징과 북을 두드려 행차를 막고 억울한 사연을 직접 호소하는 백성들의 소원 통로였다.

    ▼오늘날에도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존재한다. 2017년 8월 시작된 국민청원은 윤창호법, 민식이법 등이 제정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청와대는 도입 3주년인 지난 8월 19일 기준 총 87만8690건, 동의 수 1억5088만명, 총 방문자 수 3억3836명, 20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청원은 189건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청와대는 178건을 답했다.

    ▼정부가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국민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온라인 이슈가 국민 여론의 전체를 반영한다고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청원을 통해 잘못된 제도와 정책을 논하는 장이 되어야지 일부에 의한 이슈몰이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조는 백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지금 택배기사들이 과로, 갑질 등으로 죽어가고 있다. 리더라면 국민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현장에서 답을 찾아 아픔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이준희(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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