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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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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중용에 대하여 -正祖의 화살- 안현주(국민연금공단 창원지사장)

  • 기사입력 : 2020-10-21 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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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왕들 중에는 명궁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그 중에 조선의 정조대왕은 당대의 명궁이었고 쏘는 화살마다 모두 적중이었다. 당시 활쏘기대회에서 50발 중 49발이 과녁에 꽂히자 ‘고풍(古風)이오’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풍은 활을 명중시킨 임금이 신하에게 상을 내리는 풍속을 말함이다. 즉 신하가 먼저 임금이 쏜 화살의 점수를 자세하게 적은 ‘고풍’지를 올리면 임금은 하사(下賜)라는 선물을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그러면 정조는 왜 1발을 허공에 쏘아 버리고 퍼팩트를 하지 않은 것일까? 정조는 “활쏘기는 군자의 경쟁이니 남보다 앞서려 하지도 않고, 사물을 모두 차지하려 기를 쓰지도 않는다” 며 예(禮)로서 일부러 한발을 적중시키지 않는다고 하였다.

    49발을 적중시키고 마지막 한 발을 허공에 쏘아 버린 것은 중용(中庸)의 정신이고 그것이 예(禮)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부족해도 굳이 다 채우지 아니하고, 좀 남아도 끝까지 다 하지 않는다-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不敢盡”. 오늘날 중용을 그저 ‘가운데 서는 것’ ‘중간치기’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등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단순한 처세술에 불과한 것으로 중용의 본뜻에는 한참 벗어난 것이다. 중용은 원래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에서 나온 것으로, 또한 예기에는 무불경(毋不敬)이란 말이 나온다. ‘공경함이 없으면 안된다’라는 것이다. 결국 어떤 상대이든 그 상대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실학자 박제가는 당시 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임금의 활쏘기 점수에서 50대 중 1대를 빠트린 것은 겸양의 미덕이라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은 많이 다르다. 양궁이나, 골프대회 등에서 우승이 확정되어도 마지막 발, 홀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라고 할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둘 다 훌륭한 것이다. 마지막 한 발을 적중시키지 않는 여유로운 정신세계와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오늘날의 정신세계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두가지 문화의 차이점에서 오늘날의 우리나라 및 세계적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고 거기서 또 해법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류는 고대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많은 경험치를 쌓아 왔다. 원시 유목에서 농경사회가 시작되며 장족의 문화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때때로 가뭄이나 홍수로 농작물을 다 잃어야 하는 쓰라린 경험도 겪으면서 자연의 무서움과 큰 힘에 두려움과 순응의 지혜 또한 배워온 것이다. 나름 과학 문명의 발달로 자연을 정복했다는 오만을 부리다가 이산화탄소 과다생산에 따른 최근의 온난화 부작용, 심각한 규모의 태풍 등 자연의 힘 앞에는 여전히 미약한 존재 밖에 안됨을 깨닫고 있다. 하물며 맨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해 역대급 건강위협, 경제적 재앙을 맞고 있는 지금, 거대한 자연의 힘에 건방을 떤 인류에 대한 심각한 경고이기도 한 건 아닐까? 하고 반문해 본다. 결국 상대가 자연이든 자신의 반대파이든 예기에 나오는 대로 중용의 마음으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것이 오늘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발전을 위해 나아갈 길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날 국내적으로는 코로나19사태 수습에도 너무나 힘든 지경에,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연이는 집회 강행과 금지·제한 조치, 정치인들의 이념대립 등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미·중갈등, 미국 내 11월의 대선전과 그 결과에 대한 승복시비 등 좌우 진영 논리에 일반 국민들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혼란과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만약 극단적인 좌우놀이에 빠져 있는 오늘날 정치계, 언론·유튜버계 등 우리 세대들이 정조대왕의 1발을 남겨두는 배려와 여유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면, 자연을 정복대상이 아닌 인류와 공존해야 할 동반자로 여긴다면 많은 모순과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안현주(국민연금공단 창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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