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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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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사회적 거리두기와 강제추행의 그 어딘가- 염진아(변호사)

  • 기사입력 : 2020-10-19 20: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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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코로나로 대중목욕탕에 가기 어려운 시절이다. 필자는 어린시절 대중목욕탕을 일주일에 한 번 꼭 가서 따뜻한 탕에 몸이 노곤노곤해질 때까지 담그고 있다가 때를 밀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피곤하다 싶으면 대중목욕탕을 찾곤 했는데, 돌이 갓 지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왔고, 아장아장 걸으며 엄마와 함께 탕에 들어오는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계속 쳐다보았다.

    다들 혹시나 뜨거워할까 귀여워할까 쳐다보는 그 사이, 연세 있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아이고 아들! 엄마 따라왔네~’ 하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구도 말리지 못하게 순식간에 아이의 사타구니 쪽으로 손을 뻗어 성기를 살짝 움켜쥐었다가 쓰다듬으며 손을 뺐다.

    필자는 너무 놀라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중, 아이의 엄마는 “할머니, 이게 뭐하시는 거예요” 하며 아이를 데리고 나간 뒤 다시는 탕에 오지 않았고, 이내 씻고 가버렸는데, 이후 남은 사람들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애를 건드리기만 하면 싫어한다’는 등, ‘귀여워서 한번 만진거가지고 유난’이라는 등의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과 ‘에이 그래도 방금 그건 조금 너무했던 것 아니냐’고 얼굴 찌푸리며 한마디씩 거드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대화는 거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이 없다’는 어르신들의 푸념으로 마무리되었다.

    필자는 목욕탕 사건 이후 어린아이가 귀엽다며 볼에 뽀뽀한 할아버지에게 미성년자 강제추행의 죄책을 물었던 사례, 일면식도 없는 동네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태권도 도복을 제대로 입혀주겠다며 아이를 만져 미성년자 강제추행으로 처벌을 받은 사례를 직접 접했다.

    필자는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을 ‘할머니가 동네 꼬마가 귀여워했던 행동’으로 치부하지 못하고 여러 번 생각했는데, 필자가 어른들이 말하는 ‘요즘 젊은 것들’의 범주에 있어서인지, 실제 미성년자 강제추행 사건을 심심치 않게 겪고 있는 변호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아이의 성기를 그렇게 쉽게 만지는 것은 불쾌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우리 모습 중 하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는데, 이제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코와 입도 개방하지 않고 이야기하다 보니, 이전에는 동네마트, 혹은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가끔 어른들이 아이들의 볼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보았는데 올해 들어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만지는 행동은 실제로 보지 않게된 것 같다.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 TV프로그램에서 한참 인기 있었던 6~7년 전, 일본인으로 나고 자란 추사랑의 엄마는 일본에서는 아이가 예쁘면 예쁘다고 이야기만 하는데, 한국분들은 꼭 사랑이를 한 번씩 만지고 쓰다듬는다고, 이런 행동이 정말 아이가 예뻐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악의’ 없이, 혹은 ‘고의’를 가지지 않고 한 행동이, 우리가 듣기만 해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성추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형법상의 죄명은 미성년자 강제추행이다. 추행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되는 것으로, 아무리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범죄가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처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예쁜 아이에게는 예쁜 미소와 함께 칭찬을, 그리고 아름다운 말을 건네자.

    염진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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