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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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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창원총각-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 기사입력 : 2020-10-18 20: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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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여름의 열기는 잊혀진지 오래지만, 지난 여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안들에 관한 퀴즈 하나 풀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백선엽 장군 안장, 전공의 파업, 검찰 인사, 이 세 기사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백 전 육군대장의 대전 현충원 안장 논란부터 살펴보자. 요점은 6·25 전쟁영웅을 지방 국립묘지로 모셔 홀대한다는 것. 현재 법률에 따라 합당한 예우가 갖춰진 대한민국의 국립묘지는 모두 11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보나 보수 모두 서울현충원에 차별화된 위상을 부여했던 것 같다. 논란을 지켜보며 고향인 경남 봉하마을에서 영면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균형발전의 꿈은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다음으로 의대생 국시라는 잔불이 아직 남아 있는 전공의 파업을 들여다보자.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인식에는 정부와 의협 모두 공감하지만 그 해법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부는 물 잔에 떨어진 잉크가 전체로 확산하듯이, 의사를 더 뽑고 잘 휘저어 줄 요량인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물리학의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에도 부합하고 경제학의 수요·공급의 원칙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행위자들의 선호를 중시하는 최신 경제이론과 생명체라는 경계조건 내에서 발현되는 역 엔트로피 현상을 고려할 때 정책의 실효성이 의심된다. 어떤 전공의는 “앞으로도 수도권 내에서의 경쟁만 심화되고 일자리가 없어 의사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원의 방정식을 배우는 딸아이가 권역응급의료센터 분포를 주제로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찾아본 자료 중에 지역의 의료서비스 시장에 관한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승용차나 철도로 한두시간이면 전국 어디든 연결되는 시대에 대부분 지방의 시군구는 소멸 중이므로 지역을 기반으로 의료서비스 시장 자체가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문제는 분초를 다투는 응급의료 상황이 닥쳤을 때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사망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귀농 붐이 일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경남이 은퇴 후의 소박한 삶뿐만이 아니라 늙고 병들었을 때나 한참 생산적인 나이에 가족과 함께 살아도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윤택한 지방 도시인 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검찰 인사 이슈를 살펴보자. 서울중앙지검 수사부장이 대구지검 형사부장으로 옮겨도 좌천이고,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검사가 통영지청으로 옮겨도 좌천이라고 한다. 법조계의 직제를 몰라서 직급이 어떻게 조정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사와 판사 직군에서 지방은 유배가는 곳이라는 조선시대부터의 뿌리 깊은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심지어 수도권 내에서도 수도권 신도시 홍보 지도에서 보이는 순환도로 동심원이 영전의 과녁처럼 인식되는 상황이고 보면, “도성에서 몇 십리만 벗어나도 태고의 원시사회가 되어 있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이 아직도 유효한 건 아닌지 걱정이다. 수년 전에 한국전기연구원 안산 ‘분원’에서 창원 ‘본원’으로 옮기려 가족들과 함께 이사할 때 주변에서 “OO아빠, 직장에서 무슨 문제 있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기억은 지금 반추해도 당혹스럽다.

    헌법전문에는 없지만,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수도권 공화국이다. 경제, 문화, 사회, 정치 등의 모든 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코로나로 서울역이 한산하다고 할 때에도 금요일이면 세종시 공무원들의 엑서더스는 변함이 없었다. 경남의 중심도시 창원도 마찬가지다. 한국전기연구원에는 ‘창원총각’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지난 8월 26일 본지에 소개된 ‘서울 공화국과 지방 청춘의 삶’이라는 대학생 기자의 기사는 특례시와 지역균형 뉴딜 논의가 한참인 이 때, 정책 결정자들이 새겨야 할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서울에서만 이룰 수 있는 로망과 이상들,’ ‘비수도권은 누릴 수 없는 문화적 인프라의 차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한국전기연구원에 창원총각이 많이 양산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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