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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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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예술은 어디서 나올까- 최정은(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20-10-05 20: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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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명절 동안 공공문화시설에 대한 정부 방침이 조정되어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도 닫혔던 문을 다시 열고 관람객을 맞이했다. 덕분에 반가운 얼굴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몇 년 전 미술관 중학생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미술 전공에 뜻이 생겨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고등학생과 그의 어머니이다. 저를 본 어머니는 예고 진학 후 방황하고 있는 아들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학생은 예고 진학 전까지는 미술활동 자체가 행복해서 열심히 작업을 해왔는데 예고 진학 후 미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입시준비를 위해 테크닉과 기술 연마를 중요시하는데 학생은 그런 수업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미술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예술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고 싶어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미술 대학들은 실기시험을 아예 폐지하기도 하고, 입시에 기술이나 테크닉보다 아이디어나 사고의 측면을 더 중요하게 보는 평가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디서 나올까? 기술? 아이디어? 사실 한마디로 답하기는 어렵다.

    모든 예술은 아이디어와 기술이라는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관련된 두 측면으로부터 나온다. 그 두 요소를 이야기를 통해 아주 잘 풀어내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블랙 스완’이다. 여주인공은 부단한 연습을 통해 기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기술 이외에 우리가 영감, 천부적 재능, 아이디어 등으로 부르는 측면에서는 부족하다. 예술에 있어서 교육되거나 규칙화하여 설명하기 어려운, 바로 그것은 무엇일까?

    예술의 두 가지 중요한 원천은 예술적 착상으로서의 ‘영감(inspiration)’과 갈고닦은 비범한 솜씨로서의 ‘기술(technic)’이다. 모든 예술행위는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강조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 두 측면으로부터 나온다. ‘기술’은 합리적인 규칙 등으로 설명될 수 있고 시간과 노력에 의해 숙련될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은 설명이나 교육이 불가능한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으로서 예술적 광기 등과 관련된다. ‘영감’이란 본래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 뮤즈 여신에게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를 읊는 상태’로부터 유래했다. 그것은 비합리적인 광기 등에 사로잡혀 보통 사람들은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게 되는 일종의 접신의 상태를 말한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선생은 예술가는 곧 영매, 무당이라는 말을 했는데, 예술의 이러한 측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예술가는 마치 예언자 같이 일반인들은 볼 수 없는 세계, 현실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직관함으로써,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존재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 ‘아트(art)’의 어원인 ‘테크네’는 ‘합리적인 제작기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조각이나 그림과 같은 조형예술은 ‘영감’보다는 주로 ‘기술’의 측면과 더 중요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영감’과 밀접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은 비극이나 음악과 같은 시예술이었다.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영감과 기술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술은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여 얻을 수도 있다지만, 영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많아서 사실은 답변이라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천부적인 재능을 통해서,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들을 습득함으로써, 그리고 또한 부단한 기술적인 연마에 의해 어느 순간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한다. 예술의 신비와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예술가들이 평생 동안 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바로 예술의 이 측면이 아닌가 싶다.

    최정은(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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