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대만

밤이 내린 옛골목, 낭만이 반짝이네
수도이자 중심인 타이베이
첫인상은 일본·중국 섞인 느낌

  • 기사입력 : 2020-09-03 20:35:42
  •   
  •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꿈도 꾸기 어려운 여행 단절의 시대다. 한동안은 바닷길도 하늘길도 막혔고 용기 내 여행을 떠나려 해도 이제는 여행기간에 자가격리기간을 추가로 준비해야 한다.

    비행기 표부터 끊어 두고 천천히 여행 정보를 모으고 일정을 짜며 힘든 회사생활을 견디던 나날들이 아득하다. 여행을 못간다니, 업무도, 일상도 버겁기만 하다. 이럴 땐 그 어떤 거창한 여행지보다 큰 기대 없이, 큰 고민 없이 훌쩍 떠났던 여행지들이 그리워진다. 훌쩍 떠나는 게 이제는 아예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홍등이 가득한 지우펀의 야경.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홍등이 가득한 지우펀의 야경.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지난해 5월 나는 큰 기대 없이, 큰 고민 없이, 특별한 계획도 없이 훌쩍 대만으로 떠났었다. 꽃보다 남자,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시대 등 즐겨봤던 대만 드라마, 영화 덕에 한 번도 안가봤지만 친숙한 곳이었고 비행시간도 2시간 30분 정도라 육체적인 부담도, 저가항공이 많아 경제적인 부담도 없었다. 언제든 또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이라 미리 일정을 치밀하게 짜 놓지도 않고도 떠날 수 있는 곳이었다.


    대만의 여행지는 수도인 타이베이와 타이베이 근교 지우펀, 스펀, 예류 등이 있고 남쪽으로는 가오슝과 타이난 등이 있다. 일정이 짧은 경우 타이베이를 갈지 가오슝·타이난으로 갈지 결정을 해야 한다. 나는 둘 다 가고픈 욕심에 타이베이와 타이난을 모두 일정에 넣었다. 대만의 수도라 볼거리가 많고 또 트렌디한 맛집, 카페 등이 모인 타이베이가 가고팠고 또 타이베이와는 다르게 로컬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대만 남부지역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신 사람이 붐비는 타이베이 근교의 스펀과 예류는 일정에서 빼기로 했다.

    남부도시 타이난의 예스러운 골목길.
    남부도시 타이난의 예스러운 골목길.

    타이베이를 여행의 처음과 마지막 장소로 정했기에 타이베이 근처 타오위안 공항을 이용했다.

    타이베이에서의 아침은 비와 함께 시작했다. 대만은 지역 특성상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휴대용 우산을 챙겨 다니는 것이 좋다. 타이베이의 첫인상은 일본과 중국이 적절히 섞인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 식민지의 아픔을 가진 대만은 곳곳에 그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첫 일정은 대만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잭앤 나나’라는 카페였다. 대만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꽤 있어 여행 전 미리 취향에 딱 맞는 카페를 골라 방문하는 재미가 있다. ‘잭앤 나나’는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인데 대만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핸드드립을 맛볼 수 있는데 가격은 만원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비싼 감이 있지만 여행에서의 이 정도 사치는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며 들었던 빗소리에 대한 가격까지 지불했다고 생각하자.

    대만은 식도락의 나라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맛집부터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새로운 맛집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딘타이펑은 꼭 들러야 하는 맛집이다. 본점이 제일 유명하지만 동선상 미츠코시백화점 내 지점으로 갔다. 대표 메뉴인 샤오룽바오와 계란볶음밥을 먹었는데 아, 역시나 맛있다. 특유의 향신료 향이 강한 메뉴도 있어 미리 후기를 찾아보고 주문하면 도움이 된다.

    대만의 유명 맛집 딘타이펑의 음식들.
    대만의 유명 맛집 딘타이펑의 음식들.

    전통적인 볼거리보다는 그 나라 특유의 젊음, 트렌드 등을 느끼고 싶다면 대학가를 가야 한다. 타이베이의 대학가는 융캉제, 거리 자체가 활기차고 소위 말하는 힙한 가게들이 많다. 유명한 빙수집에 들렀는데 가게가 없어져버렸다. 블로그 등 여행 후기를 보고 맛집이나 상점 등을 찾다 보면 종종 있는 일, 그래도 소품샵이나 옷가게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이베이 근교의 지우펀으로 향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라 스펀, 예류 등 지역은 일정에서 뺐지만 지우펀은 뺄 수 없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라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다만, 나처럼 센과 치이로를 떠올리며 지우펀을 찾는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각오는 좀 해야 한다. 엄청난 관광객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 보면 왜 이곳이 ‘지옥펀’으로 불리는지 깨닫게 된다.

    대만 가정집 느낌이 나는 지우펀의 숙소.
    대만 가정집 느낌이 나는 지우펀의 숙소.

    지옥펀에 대해 누누이 들었던 터라 관광객이 빠지는 저녁시간에 방문했고 지우펀에 숙소도 잡았다. 지우펀 초입의 골목과 계단 사이이에 대만의 가정집 느낌이 물씬 나는 특색 있는 숙소들이 많아 지우펀에서의 하룻밤도 추천한다. 내가 묵은 숙소는 ‘지우펀의 아침’이라는 곳으로 창밖으로 풀잎이 가득하고 멀리 바다도 보인다.

    짐을 얼른 풀고 붉은 홍등이 빼곡한 지우펀 거리로 향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여유 있게 다닐 수 있었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센이 된 느낌이다. 다만 늦은 저녁시간에는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다. 지우펀의 유명 먹거리인 땅콩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날 아침 해소했다. 가게들이 분주히 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지우펀의 아침 풍경은 또 다른 재미였다. 먹거리들도 사 먹고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누가크래커와 펑리수도 샀다.

    이제는 진짜 대만을 느끼기 위해 타이난으로 향한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철도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대만 남부의 도시다.

    타이베이가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이라면 타이난은 좀 더 아기자기하고 대만스러운 곳이다. 타이난에서도 오래된 골목길이 즐비한 션농지에로 향한다. 짧은 골목 사이사이에도 타이난 특유의 느낌이 가득하다. 대만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오래된 건물에 색색깔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건물 곳곳에 공방, 소품샵들이 많아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골목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가득하다. 션농지에는 낮과 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하니 원하는 분위기에 맞춰 방문 시간대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

    날도 더우니 시원한 음료로 당 충전을 해야할 타이밍. 이미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대만의 흑당버블티는 과감히 포기하고, 타이난에서만 먹을 수 있는 ‘녹두스무디’를 선택했다. 아직 한국에는 입소문이 안 났지만 타이난 젊은이 사이에서는 핫한 음료다. 인기만큼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기다림 끝에 받은 녹두스무디를 한입 들이켰을 때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단언컨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맛이었다. 녹두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더위를 한순간에 잊게 만들어 준다. 한국에 들어온다면, 흑당버블티만큼 인기가 많을 거라 확신한다.

    옛 일본식 백화점인 하야시백화점으로 향했다. 내부 엘리베이터부터 소품까지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예스럽고 특이한 소품들이 많고 타이난 기념품도 다양하게 팔고 있어 선물을 사기에 좋다. 백화점 5층 벽면에는 세계대전 때 남겨진 총탄의 흔적도 있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타이난에 왔다면 대표 메뉴인 단짜이멘을 먹어야 한다. 하야시백화점과 멀지 않은 곳에 100년의 세월을 간직한 단짜이멘 원조집 도소월이 있다. 단짜이멘에 곁들여진 새우롤, 굴튀김까지 다 좋아하는 메뉴들이라 더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원조집에서 먹으면 원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타이난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아쉬웠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4시간가량이 남아 계획에는 없었지만 가보고 싶었던 이자카야로 향했다. 공항까지 거리가 멀어 마지막까지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여행에서 이런 돌발 일정은 항상 좋은 추억을 남겨준다.

    동네 한구석에 위치한 비밀스런 공간 같은 이자까야에서 대만에서의 시간들을 안주삼아 곱씹고 나왔더니 골목 사이로 타이베이의 랜드마크 101타워가 보였다. 101타워와 눈도장까지 꽉 찍고 나니 여행의 아쉬움은 사라지고 이제 대만을 떠나야 한다는 게 실감 났다.

    타이베이의 골목 사이로 보이는 랜드마크 101타워.
    타이베이의 골목 사이로 보이는 랜드마크 101타워.

    대만은 현대의 기술과 트렌드가 집중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지역도 있다. 전통적인 먹거리가 있는가 하면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새로운 먹거리도 즐비하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들이 다소 식상하다면 숨은 명소를 찾는 여행으로도 추천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 여행객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들을 찾아가다 보면 대만 속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여행기를 쓰며 지난해 5월을 떠올려봤다. 그땐 이렇게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시절이 올 줄은 몰랐다. 여행은 늘 떠나기 전에 가장 들뜨고 돌아와서는 곱씹을 여유가 없었는데 코로나로 집콕 중인 요즘, 하나하나 여행의 기억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다시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 김세희△ 1985년 마산 출생△ 대구보건대학 졸업△ 마산하나병원 근무

    △ 김세희

    △ 1985년 마산 출생

    △ 대구보건대학 졸업

    △ 마산하나병원 근무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