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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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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레트로 감성- 조화진(소설가)

  • 기사입력 : 2020-07-23 20: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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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화진 소설가

    세상이 이렇게 최첨단으로 변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세상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것 같다. 몇 달 전에 산 휴대폰은 뒤처진 모델이 되고 작년에 산 자동차는 벌써 진부해 보인다. 여름 신발은 뒤에 끈이 없는 새 구두가 거리를 휩쓸고 있다. 구두와 슬리퍼를 결합시킨 실용적인 뮬 스니커즈와 뮬 구두는 많이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아서 좋다. 요즘에 킬 힐을 신는 것은 촌스럽다. 얼굴을 다 가리는 커다란 안경 태는 간곳이 없고 패션 피플들은 다시 복고로 돌아와 가늘고 둥근 작은 테를 쓴다.

    휙휙 바뀌는 세상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상만큼 쓰지 않는 물건들이 많다. 쌓이기 시작한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 시디가 장착된 인켈라디오, 선 꽂는 청소기, 무겁고 커다란 노트북, 칙칙한 마호가니 책상, 유행에 뒤처진 가방, 그 당시엔 아끼던 원피스는 지금은 너무 촌스럽다. 모직 빨강코트도 옷장에 갇힌 지 오래, 굽이 낮고 무릎까지 오는 밤색부츠는 버리기 아까워 부피가 큰데도 신발장을 차지하고 있다. 버리기 아까운 쌓인 물건들, 그것들은 꼭 피붙이 같다. 닳을까봐 소중히 입던 옷과 가방, 책장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책들, 피붙이 같지만 유령 같은 것들, 나는 이것들을 어째야 할까?

    집은 점점 좁아만 가고 나는 한 번씩 이것들을 들춰볼 때마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늘 고민한다. 남 주기도 아깝던 것들이 이제 남을 주면 욕 듣는다. 마음먹고 버리려고 꺼냈다 다시 들여놓았다하면서 몇 년이 흐른다.

    새 물건의 모델은 빠르게 지나간 세월만큼 편리함과 세련됨을 합쳐 세상에 나온다. 당연히 가격을 올려서. 백화점에 가서 새 모델을 보면 사고 싶다. 집에 와서 보면 버리기 아깝다. 두 갈래 길에서 고민고민하다 후자를 택한다.

    일부 레트로 감성이 유행이라고 한다. 일부일 것이지만 내 입장에선 반갑다. 대개의 사람들은 새로운 걸 추구한다. 열광한다. 더욱더 얇아지고 접힌 휴대폰, 백팩에 쏙 들어가는 가벼운 노트북, 새롭고 멋진 디자인에 홀린다. 당연히 값은 비싸진다. 돈이 얼마나 많아야 저것들을 살 수 있지? 생각에 다다르면 급포기가 된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지난번 전시된 물건은 없어진다. 하루가 다르게 새 물건이 나온다. 종업원은 물건에 ‘님’자를 붙이듯 ‘이건 얼마세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문장이 제대로인지 따지는 건 구식이다. 새 상품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눈으로만 보시오. 절대 만지지 말고’ 예쁜 건 만지고 싶어 손이 먼저 나간다. 종업원이 잔뜩 인상을 쓰고 다가온다. 죄 짓는 기분으로 재빨리 손을 거둬들인다.

    젊은이들이 레트로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아름답다. 젊은이라도 자꾸 추억이 쌓여갈 것이고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니 젊어도 옛것이 그립나보다. 사랑했던, 사라져가는 물건들에 대한 애착을 복고 마케팅으로 활용해 제품을 내놓는 광고가 밉지만은 않은 요즈음이다.

    조화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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