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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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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꽃 - 윤봉한

  • 기사입력 : 2020-07-02 08:00:35
  •   

  • 시집을 덮고

    꽃을 들여다본다

    꽃 속에

    한 송이의 꽃 속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는

    그런 멋진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민들레이거나

    연보라 구절초

    엘러지에 현호색 혹은

    그보다 땅에 떨어져

    시들어

    버려진 꽃일지라도

    시집을 덮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꽃은

    세상의 모든 꽃은

    저마다

    속으론 다 깊고 붉다.


    ☞ 시집을 덮어버린 시인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한 편의 시 속에 무한한 시간과 온갖 사물을 포괄하는 우주(宇宙)가 들어 있다거나, 시가 한 송이의 꽃으로서 세상을 정결(淨潔)케 하고 위무(慰撫)한다는 등의 달콤한 말에 현혹(眩惑)하고, 당하지 않는 것을 일찍 깨우쳐버린 시인이다.

    굳이 먼 곳의 산야(山野)를 찾아 나서지 않고 집 근처 어디에서라도 민들레, 구절초, 엘러지, 현호색 등의 야생화나 혹은, 땅에 버려져 뒹구는 꽃들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과감하게 시집을 덮어버린 시인에게는 살아 있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귀천(貴賤) 없는 꽃들이고, 깊고 붉은 마음을 가진 시(詩)다.

    성서(聖書) 말씀에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고 했다. 시인이여! ‘세상의 모든 꽃’들을 위해 돌아와서 등불을 켜시라. 강신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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