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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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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인생 풍경을 찾아서- 함안 합강정·반구정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풍경

  • 기사입력 : 2020-06-18 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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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

    “넌?”

    “나 이거 샀어 장작 거치대”

    “왜 샀어, 그런 걸?”

    “날 위해 그냥 샀어. 나 이거 살 때 엄청 행복했다”

    “너는 뭐해주는데? 널 위해 너한테 뭐해주냐고”

    “이렇게 너랑 같이 밥 먹는 거, 너랑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거. 난 나한테 그거 해줘”

    최근 TV드라마에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들이 나눈 대화다. 이 드라마가 나오면서 나는 날 위해 뭘 해주고 있을까를 생각해봤다는 얘기들이 많았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살아있음을 망각하는 나에게 가끔씩은 선물이 필요하다. 이번 주 뭐하꼬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과 장소에서 ‘내 인생의 풍경’을 선물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봤다.

    합강정 전경.
    합강정 전경.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강정= 넘실거리는 뭉개 구름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 초입이다.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untact) 비대면 여행이 대세라고 하는 데 어디든 사람들로 붐빈다. 배낭에 물 한 병 넣고 가볍게 혼자 있을 만한 호젓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함안 대산면과 창녕 남지읍, 의령 지정면을 경계로 낙동강과 남강이 합치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누정(樓亭)이 있다. 합강정 (合江亭)과 반구정(伴鷗亭)이다.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지.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지.

    정확한 위치는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용화산 자락에 있다. 창녕 남지에서 출발해도 좋고 함안 대산면 쪽으로 가도 된다. 합강정과 반구정을 가는 길은 임도여서 일부는 차량 통행이 제한돼 있고, 일부는 좁고 경사도 심할 뿐 아니라 구불구불해 사고 위험이 따른다. 차량을 이용하려면 장포마을이나 장포제 종점에 주차해놓고 걸어가는 것이 안전하다.

    장포제에서 합강정으로 가는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한 임도와 낙동강변과 숲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데크가 있다. 장포마을에서는 2㎞, 장포제 종점에서는 채 1㎞도 되지 않는다. 임도는 주로 낙동강을 종주하는 자전거 라이딩족들이 이용한다. 숲길 데크는 우거진 나무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보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 어린아이들이 가기에도 부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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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강정 입구의 은행나무.

    먼저 데크길을 선택하면 둘레길처럼 무난한 숲길을 따라 가다가 400년 된 은행나무와 합강정 담벼락이 보이는 곳에서 멈추면 된다. 임도를 선택하면 오르막이 많아 약간의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다행히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주는 새소리가 심심하지는 않다. 차량을 이용할 경우 5~6분 거리지만 도보로는 꽤나 걸어야 한다. 숨이 목에 찰 때쯤이면 갈림길이 나오고 큰 돌로 만든 표지석에 합강정으로 가는 화살표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낙동강변을 보면 “여기에 이런 게 있나?”라고 생각되는 한옥이 자리 잡고 있다.

    합강정은 학자 조임도가 1633년 벼슬도 마다하고 은거하면서 수학하기 위해 세웠는데 처음에는 여러 이름이 있었지만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어서 합강정이라는 이름으로 정자에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인근 선비들이 모여 뱃놀이도 하는 회합 장소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합강정 마루에 걸터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며 내가 선비가 된 듯 한편의 시를 읊어보는 호사도 누려보면 좋을 듯하다.

    데크 숲길은 합강정까지만 조성돼 있다. 함안군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데크를 조성할 것이라는 계획이 있다고는 알려졌지만 아직까지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반구정 마당에서 내려다본 낙동강변.
    반구정 마당에서 내려다본 낙동강변.

    ◇내 인생풍경 반구정에서 만나다= 합강정에서 반구정을 가려면 임도를 이용해야 한다. 두 정자 간의 거리는 몇 백미터 정도밖에 안되지만 경사가 심해 생각보다 힘이 든다. 하지만 기대하시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다. 무릎이 아프고 목에 숨이 찰 때쯤 반갑게도 반구정 가는 이정표가 보일 것이다. 이정표에서 낙동강변쪽으로 100여m 아래로 내려가면 반구정이 나오는데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고, 주변에 주차할 공간도 없어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반구정은 짝 반(伴), 갈매기 구(鷗), 정자 정(亭)을 사용하는데 ‘갈매기와 여생을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함안 반구정 말고도 경기도 파주에도 같은 이름의 반구정이 있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다. 함안의 반구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조방이 여생을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다. 조방은 임진왜란 때 홍의 장군인 곽재우와 함께 의병활동을 했고, 정유재란 때도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전쟁 후 낙동강변 우포 말바위 위에 반구정을 지어 곽재우 등 선비들과 산수를 즐기며 지냈는데 이후 홍수 등으로 침식되자 1858년 청송사가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반구정은 목조 기와집으로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 건물 자체로는 큰 감흥은 나지 않는다. 기존의 정자처럼 운치가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곳의 진가는 건축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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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정 주변의 낙동강변과 남지읍 전경.

    마당 정면에서 강변쪽을 바라보라. 순간 말을 잇지 못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남지읍과 유채단지로 유명한 남지체육공원을 비롯해 철교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반구정의 역사를 증명이나 하듯이 마당 앞에는 하늘을 향해 힘차게 가지를 뻗어 올린 670년 된 느티나무가 당당히 버티고 서서 낙동강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만히 나무 옆에 기대앉아 있자니 세상을 달관한 듯, 체념한 듯 물아일체(物我一體) 속으로 빠져든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수백 년을 버텨온 느티나무는 사느라 지친 나를 다독거려 주는 듯하다. ‘인생풍경’ 한 곳을 찾았다면 과하다고 말할까.

    이곳은 길이 험해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지만 일출이나 야경,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방치되다시피 했던 이곳은 조방선생의 후손인 조성도(94)씨가 관리를 하면서 전기도 들어오고 길도 생겼다. 지금은 아들 조광규 (65)씨가 반구정 관리동에 기거하면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보살피고 관리도 하고 있다. 서울에 살던 조씨가 지난해 반구정에 내려왔을 때는 산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갑갑하고 견기기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면서 마음도 비워졌다고 한다. 조씨는 지난해 7월 25일 새벽께 벼락소리가 나서 뛰어나와보니 느티나무의 큰 가지가 부러졌는데 가만히 나무를 쳐다보니 평소보다 훨씬 젊어보였다고 한다. 조씨는 나무도 무게를 이기기 위해 자신의 가지를 버려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내려놔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자 서울에서 하던 업도 정리하고, 마음도 편해졌다고 한다. 부러진 가지를 정비하고 나니 시야도 확 트여 낙동강변 정경도 더 잘 보이게 됐다고 한다.

    반구정의 숨은 포인트는 3~5월 사이 피는 남바람꽃이다. 국내 군락지는 함안 반구정 일대와 전남 구례와 제주도 성산 3곳 뿐이라고 한다. 꽃이 필 때 외부인들이 가져가기도 해 지금은 철망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보호하고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지고 보이지 않는다. 역시 지금 반구정에는 뻐꾸기소리는 들려도 갈매기는 보이지 않는다.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반구정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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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말이산고분군. /경남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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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양생태공원. /경남신문 자료사진/

    ◆주변 볼거리= 아라가야의 흔적이 남은 함안은 함안말이산고분군과 고려동유적지, 방어산마애불, 무진정, 아라왕궁지 등 역사여행을 할 수 있는 곳과 입곡군립공원, 악양생태공원, 연꽃테마파크, 함양악양둑방 등 생태여행을 할 수 있는 곳도 많다. 합강정과 반구정 인근에는 양귀비꽃이 즐비한 악양둑방길과 경비행기체험장은 물론 악양근린공원과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있는 악양루를 강추한다.

    글·사진=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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