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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어느 시인의 출판기념회- 홍옥숙(사천문인협회 회장)

  • 기사입력 : 2020-06-15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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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옥숙 사천문인협회 회장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처음부터 저녁이나 먹는 조촐한 모임이라 했지만 이렇게 조촐할 줄은 미처 몰랐다.

    명성이 높을 뿐더러 팬들이 많은 시인의 출판기념회치고는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그나마 고사하는 선생님을 설득해 제자들이 어렵게 마련한 자리라하니 놀랍기까지 했다.

    참석 인원은 나를 포함해 5명이었고 그 흔한 케이크와 촛불도 없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만 먹었다. 어디까지나 시인의 의지였다 해도 초대된 나로서는 왜인지 송구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유쾌하게 시집에 사인을 하여 건네는 시인의 얼굴에서 순간 삶의 고뇌를 읽는다. 낯익은 이 서늘함을 나는 안다. 생활인으로서는 너무나 서투르면서 눈빛만 형형한 채,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시인들만이 내품는 그 서늘함이다.

    내가 좋아하던 시인의 운명은 하나같이 고달픔 그 자체였다. 언어의 씨줄과 날줄을 다듬어 올곧은 글을 쓰는 이는 시류에 휩쓸리지 못하고 그래서 돈과는 거리가 멀며, 그것이 숙명이 되어 등이 굽은 채로 한 세월을 견디다 가는 것을 보았다. 아, 이 대목에서 견딘다는 말이 참 아프다.

    자연스레 이선관·최명학 시인 생각이 난다. 가누기조차 힘든 몸으로 추산동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던 이선관 시인, 리어카 행상을 하며 절제되고 아름다운 시어를 토해내던 최명학 시인, 인간의 굴레를 벗지 못해 어쩌다 실수는 할지언정 죽어도 야비할 수 없고 비굴할 수 없는 성품으로, 오직 글 쓰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은 이렇게 초라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전업 작가로서, 가뭄에 콩나듯 하는 인기작가가 아니고는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현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글만 써서는 집은 고사하고 아예 먹고살 수도 없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 될 것이다.

    문화가 선진국의 척도를 가늠하는 시대이다. 제발, 전업 작가들이 글만 써서도 자신의 집 정도는 장만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홍옥숙(사천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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