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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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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보편적 재난지원을 연대 강화의 지렛대로- 감정기(경남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20-05-05 2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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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기 경남대 명예교수

    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을 위한 2차 추경안이 통과됨으로써 모든 국민이 세대 단위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총선 이후 여당이 청와대와 기재부를 움직이기 위해 잰걸음을 하여 일군 성과이다. 총선 국면에서 뜻밖에 여당보다 더 강력하게 보편급여를 내세운 바 있었던 보수야당과 재원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처럼 큰 난관 없이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뤄진 점도 그랬지만, 과거의 다른 보편급여 논쟁에서 보였던 여론의 동요가 이번에는 별달리 크게 불거지지 않았던 점도 괄목할 만했다. 상황이 심각하고 긴박했을 뿐 아니라, 사안의 성격도 과거의 예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싶다. 이번 조치는 개별 가계의 생계문제에 대응한 복지대책일 뿐 아니라 고사해가는 경제를 회생시켜야 할 경제대책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번의 보편적 국가 재난지원금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한 번쯤 숙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보편주의는 사회연대의 한 결실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사회집단들 사이에 공존을 위해 어렵사리 이뤄낸 양보와 타협의 결과로 본다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와 욕구에 대해서는 보편주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모두가 동등한 사회구성원임을 확인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다. 이런 보편주의 하에서는 고소득층이 좀 더 부담하는 대신 혜택은 동등하게 받는 일이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초중고교 무상교육 혜택을 빈부 구별 없이 다 같이 누리는 일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번의 보편적 재난지원금은 비록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일시적으로 추진되는 것이긴 하나 이와 같은 보편주의의 기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누구나 겪는 재난이므로 모두에게 동등하게 혜택이 주어져야 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절차적 간결성은 부차적인 이유라 본다. 정치권의 합의는 곧 뜻이 다른 사회구성원 사이의 합의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는 선별주의를 선호할 법한 보수 야당까지 보편급여를 주장하고 나섰던 것은 국민 다수가 어떤 방식을 더 원할지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랄 수도 있다. 문제는 재원이다. 자금이 긴급하게 마련돼야 하는 만큼 국가가 일시적으로 빚을 떠안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빚은 누진적 징세 시스템을 통해 사후에 충당하면 된다. 그런데 이때 부유층이 부담하는 부분을 두고 ‘환수’, ‘줬다 뺏기’, ‘조삼모사’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연대의 원리를 폄훼하는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따른 조세부담은 연대사회를 위해 기꺼이 지는 사회적 의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처럼 고소득층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여 재정부담을 완화하려 한 일은 썩 좋은 발상은 아니라고 본다. ‘자발적’ 기부에 기대는 방식은 보편급여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의 일반 원리가 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담의 의무를 제도화하는 누진세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다듬어 가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이처럼 다소 복잡한 사정이 있긴 하였지만, 이번의 재난에 대응하면서 쌓은 경험들이 우리 사회에 연대의 의식과 관계를 좀 더 키워가는 데 지렛대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이기적 욕망을 유보하며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 확인한 바 있고, 보편적으로 부딪히는 위험에는 보편적 급여가 답임을 재난지원 방식 결정 과정에서 인식하게 된 바, 이런 경험에서 깨달은 연대의 가치를 너무 쉽게 잊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적 관계, 어떠한 분배 및 재분배의 구조를 택하는 편이 국민 각자의 이익과 행복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일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선택이 긴요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감정기(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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