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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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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관성의 법칙-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 기사입력 : 2020-04-05 20: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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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와 그 맥락은 다르지만, 이 시대 한국인에게 “4월은 잔인한 달”임에 틀림없다. 수학 여행길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라일락 꽃말이라는 ‘젊은 날의 추억’을 경험 해보기도 전에, 허망하게 스러져야 했던 세월호 사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필자는 한국전기연구원 안산분원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도시 전체에 내려앉았던 그 잿빛 먹먹함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수사를 통해 밝혀진 침몰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 중 침몰의 역학적인 부분만 들여다보자. 최대 적재량을 훨씬 초과하는 과적으로도 모자라,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덜어낸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싣고, 한 술 더 떠 화물을 고정하기 위한 결박도 소홀히 한 채, 물살이 매우 빠른 지역에서 급격하게 항로를 변경하면서 관성에 대항하는 복원력을 상실하게된 것이 치명적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후 사태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안전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작은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창원 시내에서 회의나 식사를 마치고 한국전기원구원이 위치한 불모산동 공영 차고지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곧게 뻗은 창원대로를 내달리던 버스는 정류장이나 신호 앞에서 급제동 하고, 지정된 승차 위치에서 한 참 벗어난 채 대로에서 승객을 서둘러 태우고는 급출발하기 일쑤다. 물리학의 근간인 뉴턴 역학 제1법칙, 관성을 온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생생한 실험실이다. 이 여정의 백미는 차고지 인근 굽은 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과격하게 회전하는 레이싱으로 마무리 된다.

    인근에는 부산신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어 대형 버스와 화물차의 통행이 잦은 편이다. 김해에서 넘어오는 창원터널과 부산으로 연결된 불모산 터널 진입로 인근의 굽은 길에는, 대형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진행하면서, 아스팔트를 밀가루 반죽처럼 회전반경 밖으로 밀어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장마철이 오면 이로 인해 발생한 포트 홀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또한 관성이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경륜장이나 레이싱 경기장에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굽은 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길 자체를 경사지게 만들어 관성력을 상쇄시킨다.

    관성의 영어 표현인 inertia는 ‘게으르다, 쉬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외부의 영향(힘)이 없을 때, 본래의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고전 물리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지만 일상생활에도 적용되는 철학적 해석이 가능한 개념이다. 이전의 관행이나 습관 등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일상의 관성 때문이리라. 현재 상태에 대한 자각과 개선을 위한 의지, 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매년 4월 16일은 국민안전의 날이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희생자를 추모하며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안전의식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의 안전의식도 흘러간 세월만큼 향상되었을까? 얼마 전 출장길 고속도로에서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형 트럭에 수북이 실린 흙이 바람에 날려 보닛과 앞 유리를 마구 두드리는 사건을 경험하며 의문은 더 깊어진다. 세월호 같은 참사는 이런 사소한 몰상식이 쌓여서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닐지 되돌아 볼 일이다.

    육중하고 커다란 바퀴는 돌리기도 어렵지만 세우기도 어렵다. 안전에 대한 개개인의 자각과 상식적 원칙에 대한 일상의 실천이 꾸준히 모여 타성의 수레바퀴를 세우고 안전을 향한 방향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콜린스의 ‘플라이휠’ 이론이 예측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을 그저 괜찮은 국가에서 위대한 국가로 도약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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