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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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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최악의 ‘흑역사’로 남을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3-30 20: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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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욕(私慾)은 정도(正道)를 이탈한다. 결과에만 혈안이 돼 과정은 뒷전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온갖 편법과 꼼수가 난무한다. 파행을 부르고 몰락을 재촉한다. 요즘 정치권이 꼭 이 꼴이다. 유권자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비례대표제를 만들겠다고 호언하던 게 엊그제다. 원안에는 못 미쳐 ‘준(準)’ 자를 붙인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선보였다. 선거제 개혁이란 그럴싸한 명분도 내걸었다.

    ‘대의’를 향한 과정은 험난했다. 소수정당은 이전보다 의석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거대정당과 손잡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이 합세한 속칭 ‘4+1 연합군’은 한껏 고무됐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적과 손잡고 다른 적을 물리치는 전략을 구사했다. 드잡이와 악다구니가 횡행하고 장도리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까지 등장하는 난장판을 연출했다. ‘개혁’과 ‘반개혁’ 프레임으로 몰아간 전략은 주효했고 승전고를 울렸다. 하지만 기세 등등했던 ‘거사’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본격적인 이해타산 정산에 들어가자 명분은 내동댕이쳐졌다. 연합전선은 금이 가고 이전투구의 아귀다툼만 남았다. 갈가리 찢긴 모습은 당리당략에 함몰된 정치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1석이라도 더 끌어오려는 악착은 세계 정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위성정당’이란 최악의 흑역사를 썼다. 후안무치한 정치권의 막장 드라마는 거침없었다. 후보 순위 배정을 놓고도 격렬한 집안싸움을 벌였다.

    준연동형비례제는 개혁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불명예스런 게임의 룰로 전락했다.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당장 손봐야 할 제도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현실이다. ‘동물국회’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그 난리를 치면서 내놓은 결과물이 고작 이 정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선거제다. 독일에서는 두 선거제가 연동돼 정당 지지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결정한다. 지역구 당선 의원으로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을 못 얻으면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이에 초과의석이 존재해 선거 때마다 정원이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원정수를 300석으로 묶고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을 연동형 배분의 상한선으로 하는 ‘캡(cap)’을 적용한다. 연동률은 50%다. 나머지 비례 의석 17석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기존 병립형 배분 방식을 따른다. 이에 지역구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정당지지를 많이 받더라도, 비례대표 의석 중 연동형이 적용되는 의석을 많이 차지할 수 없다. 거대 정당은 ‘꼼수’에 눈을 돌렸다. 결국 위성정당이란 기상천외한 ‘정치 기형아’를 탄생시켰다. 역설적이지만 위성정당 창당 원인 제공이 바로 어설픈 현행 선거법이란 얘기다.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대표로 국회에 진출하기 어려운 사회적 소수자 등을 배려한 방편이다. 하지만 애초 취지는 잊힌지 오래다. 여성·청년 등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지역구는 물론이고 비례대표까지 거대 양당이 휩쓸 공산이 크다. 50㎝에 달하는 투표용지를 받아든 국민에게 그저 ‘닥치고 투표만 하라’는 겁박이나 다름없다. 유권자의 침묵은 이런 몰염치한 반칙행위를 인정하는 꼴이다. 1980년대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재야 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일갈이 스친다. “그 나물에 그 밥이고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그놈들 중에 제일 나쁜 놈들이 다 해 먹는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면 투표는 꽃을 피우는 씨앗이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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