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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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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광장- 조은길

  • 기사입력 : 2020-03-05 0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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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초 뽑는 여자들이 납작 엎드려 훑고 지나간 시청 앞 잔디 광장은 초록 콜타르로 미장을 한 듯 초록으로 만장일치다 만장일치로 주저앉아 있다

    날 선 구둣발이 머리통을 마구 짓밟아도 구린 엉덩이로 숨통을 틀어막아도 만장일치로 침묵하고 만장일치로 인내하는저 무지막지한 평화주의자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무도 들고 일어나지 못하게 서로의 오금을 꺼당기고 있다 핏줄이 시퍼렇게 뒤엉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초록에는 제 살을 꼬집으며 참는 긴긴 설움의 가족사가 있다

    ☞ 중국발 코로나19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공포(恐怖)에 떨게 하고 있는 가운데, 개구리를 비롯한 동물들이 동면(冬眠)에서 깨어 나온다는 경칩을 지나고 있다.

    광장(廣場)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여러 갈래의 길이 모일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 놓은 마당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호교감(相互交感)을 통해 이상과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외적으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것 같은 요즘, 시인은 초록으로 만장일치 된 광장을 지나다가 날선 구둣발과 구린 엉덩이에도 인내하는 ‘평화주의자들’을 만난다.

    그 어떠한 불의(不義)와 시련에도 ‘서로의 오금을 꺼당기고’, ‘핏줄이 시퍼렇게 뒤엉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기억해야 할 이 땅과 우직한 생명의 역사를 제 살을 꼬집는 아픔으로 견뎌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서로 끌어당기고 껴안으면서 지탱해 오고 있는 민초(民草)들의 삶을 한 번쯤은 들여다봐 줬으면 하는 아련한 봄날이다. 강신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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