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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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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66) 제25화 부흥시대 76

“우리 댄스홀에 가요”

  • 기사입력 : 2020-02-07 0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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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는 흑백 화면이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미국과 영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양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영화 속 풍경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영화의 감동 때문인지 영주는 이재영의 팔에 바짝 매달려 걸었다. 이재영은 영화의 장면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여주인공 아라 퍼슨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소년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을 접한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침략자로 왔으나 미국인들은 해방군으로 왔고, 6·25가 일어나자 우방이 되어 돌아왔다. 그들은 공산군을 물리치고 한국인들에게 원조를 해주었다. 부유한 나라, 문명국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그들을 동경했다.

    미국 영화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자유로운 연애와 사랑 이야기는 한국인들이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영화배우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여자들은 미국의 잘생긴 남자배우에게 매혹되었고, 남자들은 여자배우들에게 매혹되었다. 남자들은 미국 배우들처럼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여배우를 따라 헤어스타일을 하고 옷을 입었다.

    “미국에 가고 싶다.”

    영주가 이재영의 팔에 매달려 종알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미국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

    “영어를 할 줄 알아?”

    이재영은 밤거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극장에서 얼마 걷지 않자 유흥가가 나왔다. 건물마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카페, 댄스홀, 카바레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미국 군인도 더러 보였다. 그들 중에는 흑인도 있었다. 영주를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기도 했다.

    “후후. 영어를 어떻게 해요?”

    영주가 댄스홀의 간판을 보면서 종알댔다.

    “댄스홀에도 가고 싶고….”

    “영주, 큰일 나겠네.”

    “회장님, 우리 댄스홀에 가요.”

    “댄스홀에는 왜 가? 나는 춤을 못 춰.”

    “그럼 가서 술이나 마셔요. 응? 가요.”

    영주가 이재영을 잡아끌었다. 이재영은 영주에게 이끌려 댄스홀로 들어갔다. 댄스홀에는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미국 군인과 춤을 추는 여자들도 있었다.

    댄스홀은 성업 중이었다.

    이재영은 맥주와 안주를 주문하여 조금씩 마셨다. 춤을 추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춤이나 배우러 다닐까?”

    영주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잡기에 빠지면 안돼.”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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