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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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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각박한 세상일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 김서준(변호사)

  • 기사입력 : 2020-02-06 20: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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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여름, 티베트를 여행하던 중의 일이다. 이른 아침 포탈라 궁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느 공원에서 갑자기 나타난 두 아이를 보고 순간 놀라고 말았다. 5~7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매였는데, 얼굴은 때가 끼어서 시커멓고 콧물이 입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애타는 눈빛으로 나에게 두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어 10위안을 꺼내 주고 말았다. 그러자 그 남매는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저 뒤에 있던 부모에게로 쪼르르 뛰어갔다.

    나는 그 때문에 동행한 일행으로부터 핀잔 아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일행의 말로는 부모가 여행자를 노리고 아이들을 시켜 하는 돈벌이라는 것이다. 홍콩에도 저런 사람들이 많은데, 더러는 하루 수입이 샐러리맨의 한 달 월급만큼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돈이 아까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었다.

    최근 여러 자선단체에서 기부금을 바른 데 쓰지 않고, 횡령·유용해 왔다는 기사들을 보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려운 사정을 보면 돕고 나누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인데, 이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사람의 본성일까? 딸의 희귀난치병으로 모금 받은 수십억 원으로 호화 여행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동물협회 대표는 동물 구조 후원금을 착복하기 위해 유기 동물들을 안락사시켜 왔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유명해진 사람을 인기 영합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베품에 대한 자조만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선한 마음은 남의 사리사용에 이용당할 뿐이므로, 결국 약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세태의 반영인지 구세군 냄비의 후원금은 매년 줄어만 가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다. 재산이 전혀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 일곱 가지는 결국 따뜻한 마음으로 귀결된다. 따뜻한 마음마저 속이는 각박한 세상이나, 그래도 그 마음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일부 악용될지언정 쓰면 쓸수록 풍족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돈을 강탈해 갔던, 그러나 눈빛만은 맑았던 티베트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다.

    김서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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