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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GM Korea? Give More, Korea!

  • 기사입력 : 2020-01-28 08: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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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슬 기 사회부

    “새해 소원은 다 같이 복직하는 것이죠. 설날에는 제발 회사 이야기 안 나왔으면 좋겠고요.”

    가족들과 모이는 설을 맞는 한국지엠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설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1일 규탄대회를 하고 있는 노동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날은 설날을 앞두고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3차 노동자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회사를 생각하며 떡메를 내리치는 퍼포먼스가 열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복직을 바라는 파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회사 안으로 날려보냈다.

    그러다 상황이 급작스럽게 돌아갔다. 대회 시작에도 보이지 않던 금속노조 간부, 비정규직지회장, 여영국 의원 등이 어디론가 차를 타고 갔다. 한 시간 반이 더 지나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앞에 도착해서야 합의안을 도출하고 나오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노동부와 경남도, 국회의원이 보는 앞에서 노사가 합의했다는 내용을 들으니 비정규직 노동자의 새해 소망이 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합의에는 해고 비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책임지는 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와 협의가 가능한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선다는 것은 의미 있었으나 복직에는 모두 회사의 사정이 나아질 때라는 단서조항이 달렸으며 그마저도 구두합의였다.

    해고비정규직들은 희망고문과 같은 이 안을 받아들이면서 연대해 준 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는 전화를 새해인사로 돌렸다. 해고당한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측이 노조를 통해 내놓은 이 안은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또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워 보였다. 회사사정 개선에도 복직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노갈등이 우려되는, 누구든 핑계를 대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GM의 유럽 철수 비용 상당부분을 한국지엠이 감당하고, 한국지엠이 본사에 빌린 돈에 고리의 이자를 챙겨주고 있으며, 한국에 부품원가를 높게 책정해 한국지엠의 경영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한국지엠은 본사의 ATM기기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여기에 58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몰고, 또다시 희망고문을 내건 한국지엠의 정식 사명,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약자인 ‘GM Korea’가 잘못 읽히는 건 누구의 탓일까. 지난해 정부로부터 8100억원을 받고도 계속 무언가를 바라는 Give (me) More, Korea로 읽히는 건 기자의 탓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슬기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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