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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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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우리 집- 전형수(전 경남도 법무담당관)

  • 기사입력 : 2020-01-16 20: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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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우리 집에 가자! 엄마가 두레나 품앗이 일 나가실 때 치마꼬리에 묻혀 따라 나섰다.

    밭이랑 논두렁에서 뒹굴다 보면 이내 지쳐 졸음도 오고 내 손에 없는 옆집 아이가 물고 있는 보리 개떡은 목젖이 깔닥거려 군침을 삼킨다. 출구라곤 엄마의 처방만 믿고 칭얼대며 조른다. 그때 엄마는 큰사람으로 태산 같았다.

    배가 고파도, 아쉽거나 괴로워도 서럽고 아플 때 기대면 되는 존재로 모든 것을 다 해내는 해결사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난감한 엄마는 어르고 달래고 야단도 친다. 덥석 집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 무슨 방도가 있었을까. 가난하다 보면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가진 자의 맞은편에서 느끼는 초라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동네 복판에 있던 우리 집은 울도 담도 없었고 더욱이 누가 와도 집어 갈 만한 것이 없었으니 자물쇠도 없는 무상출입이 허용된 곳으로, 쓰러지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초가삼간에 가본들 갖추어진 것이라곤 개뿔도 없는데 거기가 뭐가 그리 좋다고 가자며 보챘을까.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되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래도 그곳은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고 우리 식구끼리 부담 없이 다리를 뻗칠 수 있고 아무도 모르게 아픔을 감출 수 있는 곳이었다. 또 다음 새날을 열어 갈 수 있는 안식과 희망의 공간이었기에 그리로 마음 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20여 년 전 헐어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조금 옆에 새로 지은 슬라브조 집엔 졸수(90세)를 넘기신 엄마가 늙고 쪼그라든 채 이미 큰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 내게 기대어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이 우리 모자의 위치를 바꿔 놓았지만 나는 살갑게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그래도 군소리 없이 나무랄 생각은 꿈에도 없으시고 나 챙길 일에 여념 없어 하시며 가끔 허리를 펴시며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할 때 저절로 긴 한숨을 내시는 모습에서 엄마의 크기와 무게를 가늠해 본다. 지금 생각해도 그 하찮았던 우리 집의 안온함이 폐부에 밀려든다. 오늘도 내 마음은 옛 우리 집으로 간다.

    전형수(전 경남도 법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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