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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설날인데 무얼 하며 놀까?- 양미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20-01-16 20: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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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 부는 언덕에서 남자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겨울이면 남자애들은 연날리기나 팽이치기, 제기차기를 하며 놀았고, 여자 애들은 공기놀이나 콩주머니 받기,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온 동네가 떠들썩하였다. 평소에도 친구들끼리 하는 놀이지만, 명절이면 아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겨루기라도 하듯 놀이에 몰두했었다.

    연날리기 같은 경우 상대의 연과 실을 교차해서 먼저 끊으면 승자가 된다. 연을 떨어뜨린 패자와 승자와의 사이엔 긴장감이 감돌곤 했다. 그 과정에서 졌을 때 깨끗이 승복하는 것과 이겼을 때 상대를 배려하는 사회성을 배웠었다. 사람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보다 더 창의적이었다. 고무줄놀이 하나만 해도 열 가지가 넘었다. 노래에 맞추어 고무줄을 낮추거나 높여가면서 난이도를 조절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고무줄 넘는 재주가 거의 서커스 수준이었다.

    요즘은 전통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쉬는 날이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다. 어른들은 골프나 수영을 하거나 사이클링을 하는 등 자신들을 위한 여가를 즐긴다. 자녀들과 함께하는 거라곤 콘도를 가거나 패키지 여행하는 정도다. 그래선지 명절이면 공항이 북적거린다. 이런 문화는 상업자본에 의해 조성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한 대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 하니 저렴한 자전거는 라이딩 그룹에는 끼지도 못한다. 골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놀이문화가 그렇다. 뭐 하나 하자면 상당한 지출이 필요하다.

    전통놀이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팽이든 연이든 콩주머니든 손수 만들어서 즐겼다. 만드는 아이들에 따라 모양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친구의 장점을 가져와 제 것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돈 많이 안 들이고도 창의력이 개발되고 밖에서 뛰노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설날이 되어 가족이 모이면 어른들은 화투나 치고 아이들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화투놀이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부모 자식 고모 삼촌 다 모여서 화투짝을 바닥에 치면서 하는 말이 “○○, 빨리 죽어!” “○○, 똥 먹고 싸라!”다. 이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골프나 사이클링이니 콘도 문화 같은 것이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면, 화투치기는 일본에서 들여온 놀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가진 고유의 놀이는 얼마나 건강한가. 언젠가 안동 하회마을을 갔는데 널뛰기와 그네가 갖춰져 있었다. 일행은 너나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한바탕 민속놀이를 즐겼다. 가끔 고궁 같은데 가면 윷을 비롯한 전통놀이를 즐기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용객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정서적 단절이 된 것이다. 내 생각으론 공원이나 도서관과 학교 등에 ‘주말 전통놀이관’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이곳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어울러 놀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같이 제작까지 한다면 훨씬 참여도가 높아지지 않겠는가. 이리 되면 부모 자식 간에도 단절된 대화가 이어져 원만한 의사소통도 덤으로 얻게 되리라.

    이번 명절에는 방 안에서 “똥 먹고 싸라!” 같은 소리보다는, 마당에서 던지는 윷놀이라든지, 아니면 동산에라도 올라 연날리기를 하면서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양미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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