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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자!- 백승진(경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0-01-13 20: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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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퓰리처 드라마 수상작인 트레이시 레츠의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붕괴를 보여주고 있다. 한때 시인이었던 알코올 중독자인 비벌리가 실종된 후 익사체로 발견된다. 장례식을 위해 외지에 나가 있던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면서 가족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구강암 치료를 받고 있는 비벌리의 부인 바이올렛은 치료 약물중독에 빠져 심한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다. 큰 딸 바바라는 학생과 잠자리를 하고 있는 대학교수 남편 빌과 별거상태로 이혼 위기에 있다. 막내 딸 카렌은 하는 일이나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약혼 남 스티브가 열네 살인 조카 진과 함께 마리화나를 흡연하고 조카를 성추행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둘째 딸 아이비는 사촌 찰스를 사랑해 둘이 뉴욕으로 가려하지만 실은 사촌이 아니라 이복동생이다.

    바이올렛은 찰스가 자기 남편과 자기 동생 사이의 아이인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바이올렛은 바바라와 빌의 별거 사실을 가족들에게 밝히고 이후 둘의 몸싸움으로 번져간다. 결국 모두 집을 떠나고 바이올렛 홀로 집안일을 도와주는 인디언 여자와 남게 된다. 가족 구성원들의 어두운 과거가 들춰지면서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과 미움이 표면화되고 마지막에는 한 가정의 잔해만 남게 된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 극작가 유진 오닐도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네 명의 타이론 가족이 겪고 있는 과거의 상처와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불신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오닐의 자서전적인 작품으로 완성된 작품을 출판사에 보내면서 오닐은 관계자에게 자신이 죽은 후 25년이 지나서 출판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오닐은 눈물과 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숨기고 싶었던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되도록 늦게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오닐은 이 작품을 세 번째 부인 카로타에게 헌정하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타이론 가족을 위해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2020년 새해 일찍부터 어수선한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월 3일 미국은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공습해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이란이 미국 대사관 네 곳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솔레이마니 외에 예멘에 살고 있는 이란의 또 다른 핵심 사령관 압둘 레자 샤흘라이도 목표로 삼았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5일 후에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미군 주둔 기지인 아인 알아사드 기지와 아르빌 기지에 미사일을 쐈다. 이란 국영TV 보도에 따르면 미군 공군기지 한 곳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한다. 이란은 미국 우방국들에게도 미국에 원조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를 하고, 이스라엘이 솔레이마니 암살에 연루됐다는 강한 의심을 하면서 이스라엘에게도 보복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가 군사 행동 대신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를 선택해 미국과 이란의 사태가 최악의 상황은 피해간 듯하다.

    그러나 테헤란에서 키예프로 향하던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 176명 전원이 사망했는데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우발적으로 피격됐다는 미국 측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되면서 이란 내에서는 당국과 군부를 비난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호르무즈에 파병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고 이에 파병 반대 집회도 열리고 있다. 보복을 위한 계속되는 악순환이다.

    과거의 상처로 만들어진 미움과 증오와 불신을 오닐이 보여 준 사랑과 이해와 용서로 품어주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백승진(경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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