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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금성'서 '글로벌 LG' 도약…故 구자경 회장 발자취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 이끌어…기술 중시로 세계적 기업 성장
선생님 하다 경영권 승계…'오직 사람이 경쟁력' 철학 강조

  • 기사입력 : 2019-12-14 19: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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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인이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은 1950년 6남 4녀 중 장남인 구 명예회장을 회사로 불러들인다.

    구 명예회장은 부산사범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며 경영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별세하면서 LG가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경영을 이어받아 1970년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을 이끌며 회사를 한국 기업 럭키금성에서 세계적인 기업 LG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로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 특히 주력했다. 그 결과 LG그룹이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

    구 명예회장이 재임 기간 설립한 국내외 연구소만 70여개에 이르며 중국, 동남아시아, 동유럽, 미주 지역 등에 LG전자[066570]와 LG화학[051910] 해외 공장 건설을 추진해 글로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총수의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권한을 이양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한 것도 구 명예회장의 공로다.

    LG그룹은 구 명예회장이 취임한 1970년 매출 260억원에서 1995년 3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1995년 1월 럭키금성 명칭을 LG로 바꾸고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국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사람 만이 경쟁력이라는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 철학을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 후에도 이 같은 소신을 갖고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공을 들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하고, LG복지재단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구 명예회장은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982년 한국산악회회장, 1987년 제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자연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에 별세했고, 지난해 5월 장남인 구본무 회장까지 먼저 떠나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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