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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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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일송정 푸른 뜻은- 이선중(시인·문학박사)

  • 기사입력 : 2019-10-17 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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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바닥만 한 우리 집 마당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를 제법 운치 있게 가꾸려고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가지치기를 한다. 서투른 정원사 솜씨로 주말에만 가지치기를 하다 보면 고작 두 그루의 소나무를 다듬는데도 꼬박 한 달이 걸린다. 곱게 다듬어진 소나무를 일 년 동안 두고 보는 기쁨은 힘든 작업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만족감을 주긴 하지만, 이따금 나는 이 나무들을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산을 좋아해서 가끔 산에 오르는데 그때마다 늘 탄복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소나무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산의 정상마다 어김없이 분포해 있는 이 나무는 조물주가 사람들 몰래 내려와서 손질하고 갔나 싶을 정도로 고상하고 아름답기 짝이 없어 내게는 하나하나 모습들이 예술 작품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녀들이 끊임없이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수일 전 사임한 법무부 장관의 자녀부터 N, K, J, H 등 전·현직 국회의원 자녀 이름이 연일 뉴스에서 거론되는 상황에 국민 대다수가 피로감을 보이면서 일부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과 배신감에 분노의 감정까지도 느끼는 실정이다.

    저마다 다른 이슈와 사건이지만 그 안에는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자녀들이 부모의 우월한 학력이나 권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좋은 환경에서 각종 특혜와 부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부모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대를 이어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욕망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요구에 앞서서 그들의 인생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방향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 여느 집에서도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우리 집 마당에는 원래 소나무가 세 그루가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한 그루는 내가 욕심을 많이 부려 지나치게 가지치기를 한 탓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고사하고 말았다. 죽은 소나무의 그루터기를 볼 때마다 나는 나의 어리석은 과욕에 대해 자책을 하곤 한다. 아이들은 소나무와 같은 존재다. 제각각 충분히 개성적이고 가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는 자녀를 부모가 지나치게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자칫하면 나무를 고사시키는 것과 같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인생이란 도화지는 단 한 장뿐이다. 아이에게 주어진 도화지에는 온전하게 아이의 욕망과 감성과 의지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애정과 관심, 배려를 넘어서 헌신이라고 포장한 어른의 간섭은 절제해야 한다. 어른의 간섭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그림은 독창적인 빛을 잃게 되고 아이들의 표정도 어두워질 것이다.

    아이들 앞에 놓여 있는 세상은 둥글고 무척 넓다. 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세계 속에서 아이들이 360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린다면 모든 아이가 1등이 될 수 있다는 이어령 선생의 말씀에 절대 공감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히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본다.

    산 정상에 있는 소나무는 온실에서 자란 나무보다 더 건강하고 푸르다.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제각각의 자태를 뽐내며 주위 환경과 조화롭게 자라고 있다. 가을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가까운 산에 올라가서 그 속에 더욱 푸르게 우뚝 선 소나무를 가슴에 옮겨심고 와야겠다.

    이선중(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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