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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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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

미중일 패권전쟁과 동아시아 판도
미공개 문건 등 통한 3국의 상호작용 분석
미국의 對中·對日 입장과 체제 변화 추적

  • 기사입력 : 2019-10-04 07: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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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동아시아가 요동치고 있다. 쉽게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미·중간의 무역전쟁, 한국 대법원의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과 이로 인한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종료,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등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개별적으로 보이는 이 사건들은 사실 긴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모두 2차세계대전 이후 70년간 미국이 구축한 전후 체제의 산물이다.


    미국은 오랜 시간 동안 미일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를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향권 아래 두는 전후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미중 수교와 중일 수교, 일본의 우경화, 역사 문제를 비롯한 중일 간의 갈등,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늘 패권 경쟁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동아시아 패권 전쟁을 미국의 외교 노선 변화와 미·중·일 3국간 역학관계 이동에 맞춰 분석한 책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가 출간됐다. 저자는 호주 출신 언론인인 리처드 맥그레거로, 오랜 시간 베이징·상하이 등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한 아시아 전문가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미중일의 정부 문건을 비롯한 1차 사료부터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책과 논문을 비롯한 2차 사료를 통해 이들 3국의 전략적 상호작용과 각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맥락을 파헤친다.

    우선 저자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상황이 결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배경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힌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을 즈음, 오랜 시간 서로를 냉랭하게 대했던 중국과 일본도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지금과 달리 처음에는 오히려 일본이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사과하려 했으나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중국은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고 일본의 경제적 원조를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중국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일본을 추월할 조짐을 보이면서 관계가 역전이 된다. 이후 중국은 기회가 될 때마다 난징대학살을 비롯한 전쟁 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태도를 바꿔 과거사를 지우고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로 비쳐지길 바란다.

    일본 총리들이 ‘종전 기념일’을 전후해 전범들이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거나 태평양전쟁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날조한 역사 교과서 문제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것처럼 저자는 중국과 일본이 관계를 원만히 하려 노력할 때마다 결국 역사 문제가 늘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양국 관계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과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역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오늘날 한일 갈등의 원인과 기원을 제시한다.

    또한 일본의 역사관 못지않게 미국이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방식과 입장의 변화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시간 일본이라는 방어선을 내세워 동아시아를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 아래 두고 통제해왔다. 그러나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이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이후 미국이 두 나라 사이에서 어떻게 입장을 바꾸어왔는지,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어왔는지를 면밀히 추적한다.


    아쉬운 점은 북한 핵 문제와 남북한의 군사 분쟁,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이 일부 언급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미중일 3국의 종속변수 정도로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제정치 전문가 연세대 문정인 명예교수가 쓴 해제가 이러한 약점을 보완한다. 문 교수는 이 책이 갈등이 국제 관계의 본질이라는 명제와 정치 지도자들의 신념, 선호, 개인적 배경과 이들 간의 갈등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 변수라는 ‘지도자 중심론’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분석한다.

    최리처드 맥그래거 지음, 송예슬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2만9000원.

    이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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