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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연길에서 본 중국동포들의 자부심- 이상옥(시인·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 기사입력 : 2019-09-09 20: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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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하남성 정주경공업대에서 2년간 재직하며 서안, 상해, 북경, 청도, 우루무치, 개봉 등 중국의 여러 곳을 여행해 봤지만 정작 길림성의 동남부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북간도)를 가보지는 못했던 차에 지난주 드디어 연길을 다녀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에 흩어져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중국 동포들의 췬(단톡방)인 우리민족 문학사랑방이 주최하는 제2회 문학아카데미 ‘디카시 연변 강좌’ 강사로 초청받아 9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특강을 하며, 짬을 내어 연길의 수상시장과 연변박물관도 둘러보고, 도문과 남양 사이로 흐르는 두만강도 직접 가서 보았다.

    9월 2일 김해공항에서 베이징서우두국제공항을 경유하여 연길조양천공항에 밤 11시가 넘어 도착했다. 연길공항은 베이징서우두국제공항에 비해서는 아주 조그만 공항이었지만 조선족자치주의 공항답게 조선 냄새가 물씬 풍겨 정이 갔다. 마중 나온 분들의 안내로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중국에서 여행을 하며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기는 처음이었다. 연길로 여행 오는 한국인들이 주로 머문다는 이름이 난 민박집이었다. 숙박료는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고서 하루 100위안이었다. 피곤해서인지 숙면을 하고 다음 날 제공하는 아침은 한국에서도 잘 먹지 못하는 그야말로 어머니의 집밥 바로 그것이었다.

    연길에도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마는 민박집의 숙박료만 놓고 보면 한국에 비해서는 아직도 저렴하였다. 주인 말로는 독채민박 숙박비도 아침 저녁을 제공하고 150위안이라고 한다. 민박집 체험을 하고는 호텔로 옮겼지만 굳이 비싼 요금의 호텔보다는 연길에서는 민박을 이용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연변은 한국보다 더 한국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이었다. 새벽에 열리는 수상시장은 정말 한국의 시골 오일장 같은 정겨운 풍경이었다. 시장 옆에 개천이 흘러서 수상시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은데 수변시장이라는 말이 맞다. 수상시장은 연길의 명물로 중국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인인 줄 알면 바가지 요금을 씌우고, 또한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순박함이 흘러 넘쳐서,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장터를 따라 갔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수상시장 간 기념으로 200위안으로 보이차를 4개 구입했다.

    연변박물관에서도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박물관을 소개하는 머리말에는 “조선반도에서 우리나라 동북지구에 이주해온 중국조선족은 56개 민족이 사이 좋게 지내는 중화민족대가정의 어엿한 일원이다. 중국조선족은 지난 백여 년 동안에 기타 형제민족들과 함께 부지런한 두 손으로 무성한 가시덤불을 헤치며 거친 황무지를 벼향기 그윽한 옥토로 가꾸었으며, 곳곳에 번창한 도시를 일떠세우면서 동북의 개발과 건설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오늘의 중국 동북 지역을 건설한 중국동포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철종 말에서 고종 초부터였다. 처음에는 학정과 수탈을 피해 농민들이 두만강 너머로 이주하였고,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침략을 피해 혹은 항일 운동을 목적으로 간도로 이주하였다.

    중국 정부에서는 지금 홍콩 시위 사태 때문인지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변경 도문은 사뭇 긴장감이 흐르는 듯했고 검문도 엄격하였다.

    이상옥(시인·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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