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강희승 센터장

‘강한 해군 건설’ 헌신한 제독, 이순신 장군 전도사 되다

  • 기사입력 : 2019-08-22 20:54:16
  •   
  • 今臣戰船 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금신전선 상유십이 출사력거전 즉유가위야)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군선이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는 이 명언은 1597년 조선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후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시켰지만, 수군의 힘이 너무 미약해 조정에서 수군을 패하고 육전에 종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 수군의 폐지를 막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의 일부 내용입니다.”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에서 만난 강희승 센터장의 얼굴에 결연함이 묻어 난다.

    ‘아직~’ 이라는 말은 할 수 있다는 의지이며,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비장함이 느껴지는 글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다를 사랑했기에 한평생 바다에 머물며 오로지 대한민국 해군력 건설만을 위해 노력했던 강희승(60)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현 사단법인 이순신네이비리그 이사장).

    강희승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이 이순신 장군의 ‘선공후사’와 ‘선승구전’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희승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이 이순신 장군의 ‘선공후사’와 ‘선승구전’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해군 진해기지사령관, 해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해군본부 전력계획과장 등 해군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수천명의 해군 장병을 거느리던 강희승 제독은 37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 2014년 현역에서 물러나 나라사랑·백성사랑을 실천한 이순신 장군의 전도사로서 삶을 새롭게 설계해 나가고 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선승구전(先勝求戰)정신의 삶= 강희승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에게 있어 선공후사(先公後私)·선승구전(先勝求戰)은 삶의 철학이자 지표다.

    사사로운 일이나 단체의 이익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선공후사’, 싸움에 있어 먼저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우는 ‘선승구전’, 이런 이순신의 희생정신 이야말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우리들에게 훌륭한 삶의 지침서라고 강 센터장은 말한다. 사람마다 주어진 그릇이 있고, 그 일에 합당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또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쉽게 말해 기업의 사장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요소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선승구전 정신이 적용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기업이나 조직도 혼자서는 할 수 없기에 함께 협업하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은 그의 확고한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국방대학교 연수중이었던 강 센터장은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피격으로 인한 침몰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국방부의 발표를 국민들이 믿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들마저도 버블제트, 어뢰, 암초, 수중속도 등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지만 의혹을 가지면서 결국 서로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후 그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털어놓는다.

    “37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외부의 적을 싸워 어떻게 이길 것인가 고민했는데…, 내부의 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수나라, 당나라의 공격을 막아낸 고구려도 내부 분란으로 무너졌어요. 그리고 임진왜란도 마찬가지고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 역시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이었어요.” 그의 뇌리에 떠오른 이순신 장군의 ‘선공후사·선승구전’ 정신이야말로 지금 이 시기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생각 전환의 발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작은 이순신’, ‘나’ 보다는 ‘우리’= 강 센터장은 혼돈의 이 시대에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작은 이순신’을 키워나가는 것이 센터의 역할 중 하나로 손꼽는다.

    나보다는 우리, 우리보다 조직을, 조직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민족공동체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는 한민족입니다.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고…, 남의 자식이든 내 자식이든 모두 우리들의 후손입니다. 이들이 가진 능력과 지식을 융합할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찢어지고 갈라지면 결국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발목을 잡히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센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죠.”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미국의 이순신 미주교육본부 이사장 일행이 센터를 찾아 교포 2~4세들의 정체성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할아버지, 아빠, 나 미국 사람 아닌가요? 그런데 왜 한국말을 굳이 배워야 해요”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세종대왕, 태조 이성계 등 한국의 많은 위대한 인물들에 관한 서적을 보여줬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순신 장군 관련 책을 읽은 아이들이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이순신의 애민애족(愛民愛族) 정신이 이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한국인의 핏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이후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명감을 갖고 이순신 장군의 사상을 심어 주고 있다. 지금은 세계 187개 나라 800개 학교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강희승 센터장이 ‘물경망동 정중여산’이라는 글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희승 센터장이 ‘물경망동 정중여산’이라는 글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독 강희승= “해군에 오게 된 것은 돈이 없어서였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부자였으면…지금 생각해도 저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제독 강희승은 1979년 2월 해군사관학교 제37기로 해군의 길을 걷게 됐다. 위관장교 시절에는 2~3년 위의 선배들 중 5명을 자신의 롤모델을 정해 그들의 생활모습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담금질했다. 37년의 군 생활 중 17년을 해군력 건설 업무에 매달렸다.

    IMF 당시 국방예산 부족으로 군함 건조가 지연될 우려가 발생하자 청와대, 국회, 기획재정부 등을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예산을 따내기 위해 노력해 군함 건조사업이 차질이 없도록 노력했다. 이로 인해 세종대왕함, 이지스 구축함 사업과 독도함 등 대형상륙함사업, 209급·214급 등 잠수함사업, 고속함사업, FFX-Ⅰ/Ⅱ/Ⅲ 사업, P-3사업, 부산작전기지와 제주해군기지 사업 등 많은 사업들이 계획대로 잘 추진될 수 있도록 해군 건설에 이바지했다.

    진해기지사령관 시절에는 경남도와 창원시의 유기적인 관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창원이 기계 산업 중심의 도시지만 부대 초청 등을 통해 바다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했고, 바다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2014년 11월 말 전역 후에는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위원으로 2년간 근무하면서 최고의 군함을 만들어 해군에 인도하기 위해 마지막 열정을 쏟았다.

    “돌이켜보면 해군력 건설에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지난날이 때로는 힘들었지만 나 자신에게 정말 부끄럽지 않은 해군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그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군함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와의 인연은 전역 후 한국해양대학교 교수와 국방과학연구소 근무로 진해에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어져 벌써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 1만1000명이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를 찾아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 돌아갔다. 올해는 전국에서 약 2만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 센터장은 말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를 이순신 장군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글·사진= 이준희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