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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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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진해역으로 사람이 돌아오게 하라- 정일근(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19-07-23 20: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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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의 도시 진해에는 오래된 ‘진해역’이 있다. 진해역은 1926년부터 진해의 랜드마크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진해역이 생기면서, 기차가 기적소리 힘차게 울리며 철길 위를 오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진해를 오갔다.

    진해는 지형적으로 앞으로는 푸른 진해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장복산(해발 582m)이 가파른 병풍처럼 막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진해사람들은 오랫동안 꿈 없이 갇혀 살았다. 진해사람들의 ‘꿈’은 기차 개통과 함께 허리를 쭉 펴고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갔다.

    진해역은 2015년 2월 1일부터 여객운행이 중단됐다. 옛 모습을 지키고 있던 진해역에 ‘등록문화재 제192호’란 ‘낡은 훈장’ 하나를 달아주고 그 자리에 ‘벌’ 세우고 있었다. 더 이상 기차표를 팔지 않는 역은 기실 죽은 역이다. 죽은 역은 더 이상 사람을 꿈꾸게 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8월 진해 원도심과 진해역을 살리기 위한 ‘충무지구 도시재생’이 국가 뉴딜사업에 선정돼 진해역이 도시재생의 플랫폼으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예정대로라면 이달 10일 국토교통부에 활성화 계획서가 접수됐고, 오는 10월 발표가 있을 것이다.

    진해역을 기점으로 해서 중원로터리 중원광장까지를 긴 축으로 △도시중심 기능재생 △지역정체성&창조성 재생 △도시상권 기능재생의 플랫폼을 구성하는 계획이 섰다. 이 모든 프로그램에 250억원의 예산이 투자된다. 진해가 생긴 이래 최대 예산이 지원되는 투자다.

    비유하자면 죽어가는 ‘1926 진해역’에 ‘인공심장’을 다는 일에 250억 국비, 지방비 등의 예산이 투자되는 셈이다. 그런 만큼 진해역이 살아나서 진해를, 진해사람들을 다시 활기 있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수술’의 메스를 잡은 ‘의료진’과 ‘환자’를 맡긴 진해사람들 사이에, 수술 시작 전부터 내홍이 일고 있다. 급기야 진해사람들은 ‘충무지구 도시재생뉴딜사업 활성화계획 재검토’를 요청했다.

    그 요청서에 따르면 △주민의 동의와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인 활성화 계획 진행 지양 △도심상권 활성화와 동떨어진 진해역에 국고 집중 재검토 등과 계획안의 수정, 보완, 재검토에 주민의견의 참여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칼자루를 잡은 전문가 집단은 자신들의 설계도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성가시고, 주민들은 지역의 고민을 외면한 진해역이 바다로 떠내려갈까 걱정인 것이다.

    기존의 도시재생이 지역 단위의 뜻있는 활동가에 의해 이뤄지다, 5년간 50조원을 투자하는 이번 정부의 도시재생사업뉴딜사업이 거대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기에 사전에 양측의 갈등은 해소되고 지향점이 같은 발전적인 정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기에 더욱 자주 만나 서로의 귀를 열어야 한다.

    진해의 원도심은 늙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진해역이 인공심장을 단다 해서, 이런저런 공간을 만든다 해서 젊어질 수는 없다.

    필자는 도시재생은 실패를 전제로 해서 이뤄진다고 본다. 진해역은 역으로 기능을 되살려 줘야 한다. 기차가 다니게 해야 한다. 정기적이 아니더라도 기차가 들어오고 떠나야 역은 존재한다. 허나 진해역의 기능 회복은 역부족이다.

    그러기에 죽어버린 역을 치장하는 데 과도한 예산집행은 지양돼야 한다. 역은 역 자체로 충분하다. 그 상징적 대척점을 찾아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진해로 오게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이 상생의 콘텐츠라 생각한다.

    진해역은 표를 사고 기차를 타거나, 다시 돌아오는 장소다. ‘1926 진해역’을 통해 사람들이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 진해의 골목골목 사람 발길이 누비게 해야 한다. 도시재생이 낡은 타이어를 모아 새롭게 재생하는 일은 아니다. 얼마 가지 않아 ‘펑크’가 나게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정일근(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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