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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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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785) 부친배영(父親背影) - 아버지의 뒷모습

  • 기사입력 : 2019-07-16 07: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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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高麗) 시대 가요 가운데 어머니를 생각하는 노래 ‘사모곡(思母曲)’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하는 노래인 ‘사부곡(思父曲)’은 없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나 노래는 많이 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나 노래는 드물다.

    서양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조사를 해 봤더니, 서양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어머니(mother)’이고, ‘아버지(father)’는 두 번째가 아니고, 팔십 번째 안에도 못 들어간다고 한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대체로 서먹서먹하여, 그렇게 다정하게 이야기할 형편이 되는 가정이 몇 안 되는 모양이다.

    고금의 수많은 글 가운데서 부자간의 정을 가장 끈끈하게 묘사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있으니, 곧 중국 근대 문학자 주자청(朱自淸)이 지은 ‘배영(背影 : 뒷모습)’이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초 번역되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작자가 북경대학 재학 중인 20세 때 막 실직한 아버지와 함께 고향 남경(南京)으로 돌아가서 가재도구 등을 팔아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바빠서 전송 못 한다고 하며 심부름꾼에게 잘 보살펴 기차 타게 해 주라고 당부해 놓고는, 마음이 안 놓여 자기 일정을 바꾸어 직접 전송했다. 기차까지 올라와 창가에 좌석을 정해 주고는, 새로 사준 외투를 자리에 깔아주며 “조심해라”, “밤길 주의해라”, “감기 들지 마라” 등등의 말을 하더니, 그때 멀리 저쪽 철도 플랫폼 너머에 물건 파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뚱뚱한 몸으로 달려가 철도 플랫폼을 오르락내리락한 뒤 귤 몇 개를 사서 외투 품에 넣고 뒤뚱거리며 기차에 다시 올라왔다. 그 광경을 바라본 아들은 절로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가 볼까봐 얼른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는 귤을 펴 놓은 외투 위에 놓고, 옷의 먼지를 털고 내렸다. 그러고는 “ 나는 간다. 북경 도착하면 편지 해라”라고 하였다. 아들이 따라 나가자 아버지는 “들어가라”라고 하고는, 몇 걸음 가더니 또 아들 쪽으로 돌아보았다. 아버지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눈은 다시 눈물로 젖었다.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밖에 나가 무슨 일을 해 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안 되어 형편은 점점 안 좋아져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안 좋은 점은 보지 못하고, 아들이 있다는 것만 늘 잊지 않고 있었다. 헤어진 2년 뒤 아버지의 편지가 왔는데, “어깨고 어디고 다 안 좋다. 글도 못 쓰겠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는가 보다”라는 내용이었다. 읽는 동안에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들의 눈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지난 7월 12일이 필자의 선친이 별세한 지 6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워낙 어릴 때 별세하여, 기억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몇 장면 안 남은 것 같다.

    * 父 : 아비 부.

    * 親 : 어버이 친, 친할 친.

    * 背 : 등 배.

    * 影 : 그림자 영.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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