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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96) 남해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 해안

남쪽 바다 끝 곱게 물들인 노란 봄빛

  • 기사입력 : 2015-04-0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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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면 가천 암수바위 인근 ‘지겟길’가에 유채꽃이 피어 해안가가 노란빛을 띤다./남해군/


    “빠스(버스)가 저짜 서가 (승객을) 풀어놓으면, 갸들(승객들)이 그리 헐렁가는 모르겠다만, 설흘산을 둘러 내려오면 2시간 30분쯤 걸려. 쨍한 날은 설흘산에서 대마도가 보인다드만.”

    남면 해안을 자랑하는 강점여(80·남해군 남면) 할머니의 말이 우리 가락처럼 구성지다. 강 할머니와 10여명의 할머니들은 매일같이 다랭이마을 입구에서 장(場)을 연다. 개장과 폐장시간은 따로 없고 대략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5시쯤이면 끝난다. 쑥과 시금치, 파, 톳, 미역 등 날마다 상품이 다른 노점이다. 비경의 첫 관문인 장날 할머니들을 지나면 5~10분 간격으로 마을의 자랑인 암수바위와 남면 해안이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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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암수바위, 마을 어르신들은 미륵바위라고 부르는 신성한 곳이다.

    다랭이마을 ‘암수바위’는 명칭에서부터 형태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길쭉하게 하늘로 우뚝 솟은 바위가 ‘숫바위’고, 그 뒤로 넓적하게 누운, 임산부 모습을 한 바위가 ‘암바위’다. 이처럼 암수바위가 마을의 상징이라면 마을의 풍수지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대개 상징물은 마을의 형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연 마을의 모습이 여성의 회음부와 닮았다는 말이 들린다. 마을을 중심으로 서쪽 봉우리는 응봉산, 동쪽 봉우리는 설흘산이고 각각의 봉우리에서는 하천이 흘러내린다. 의미를 되새겨보면 마을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은 암수바위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효용 다랭이마을 사무국장은 “원래는 미륵바위라고 불렀어요. 2000년대 초 체험마을이 생겨나고 다랭이마을도 관광 명소화하기 위해 이야기가 입혀졌죠”라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건 좋은데, 마을 어르신들은 아직도 미륵바위라며 신성한 곳으로 여겨요”라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바위 모습이 기도를 위해 양손을 곱게 모은 것처럼 보였다.

    마을이 관광지로 명성을 얻기 전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암수, 아니 미륵바위는 마을 사람들조차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울타리가 있었고, 매년 음력 10월 23일이면 정성스레 제사도 지낸다. 제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제사는 마을 어르신 3명이 지내는데, 이들은 제사 전까지 잔칫집, 상갓집 방문을 삼갔다고 한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제사에 참여해 함께 만선과 어부들의 무사귀환, 집안의 평안 등을 기도했다.

    미륵바위를 지나 지겟길로 들어서면 유채꽃밭이 늘어선다. 다랭이마을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한반도 남단에 위치해 다른 지역보다 봄을 더 빨리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유채꽃은 남면 해안 산책로를 따라 약 800m 구간에 걸쳐 있다. 관광객들은 마을에 전화를 걸어 “유채꽃은 얼마나 피었어요?” “지금 다랭이마을은 무슨 색이에요?”라고 묻는다. 겨울에도 다랭이마을은 색을 띠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마을의 주산물인 마늘 덕분에 겨울철 남면 해안에서 바라본 마을은 녹색이다. 이날 기자는 한 마을 주민에게 “오늘은 배 타러 안 나가세요?”라고 물었다가 “마늘 농사짓는데 배는 무슨 배?”라며 타박을 듣기도 했다. 다랭이마을은 남면 해안과 접해 있지만 실은 농촌 마을에 가깝다. 사시사철 색을 띤 덕분에 65가구, 105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김효용 사무국장은 “연평균 35만명이 찾아요. 원래 성수기는 7~8월이지만, 최근에는 4~5월 꽃이 피는 시기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아 성수기 자체가 없어지고 있죠”라며 “지난해 5월에는 한 달간 9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는데,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단수가 되기도 했어요”라고 했다. 그에게 “작은 마을인데 관광객이 아주 많은 게 불만스럽지 않냐?”고 묻자, 김 사무국장은 “마을을 찾는 손님인데 반겨야죠. 하지만 손님들이 마을에 대한 불만을 품고 돌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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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다랭이마을 전경. 바닷가 남면 해안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사계절 색이 다르다고 한다.

    남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다랭이 지겟길’은 ‘남해 바래길’ 1코스에 포함돼 있다. 지겟길이 먼저 생겼고, 이어 남해군 해안을 따라 만든 바래길이 생겼다. 덕분에 지겟길은 바래길 여행객들의 시작점이 됐다. 여행객들은 지겟길에서 몽돌과 대리석으로 반짝이는 남면 해안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기곤 한다. 파도소리가 손에 잡힐 듯하고 산들바람에는 여유가 묻어오기 때문이다.

    김태웅(43·사천시)씨는 “차를 타고 매번 지나가면서도 다랭이마을이 나오면 남면 해안까지 꼭 내려간다”며 “바닷가로 내려가는 동안 마을 전경을 눈에 담고, 바닷가에서는 파도소리를 귀에 담고 돌아가야 다시 한 주를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과 접한 남면 해안에는 최근 설치된 다리가 있다. 다리는 마을과 바위섬을 잇는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섬을 ‘큰섬’이라고 부른다. 다리는 뚫린 철망으로 만들어져 4~5m 아래 바닥을 훤히 볼 수 있다. 다리 아래 좁은 틈에 파도가 들어와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 걱정도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암수바위(미륵바위)와 남면 해안 그리고 다랭이마을은 오는 길도 가는 길도 화려하고 거창하진 않다. 그러나 이 길은 소박하고 조용하고 생각하고 위로하는 길이다. 가만히 바라볼 수 있고, 무엇을 찾지 않아도 느끼고 가는 길이다.

    정치섭 기자 su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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